가루지기 노래 <692>허면 맘대로 허씨요
가루지기 노래 <692>허면 맘대로 허씨요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11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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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10>

박가가 고집을 부렸다. 그럴수록 옹녀 년은 오기가 부글부글 끓었다.

“어런덜 말씸에 아럴 봐줄라면 즈그 엄니가 올때꺼정 봐주라고 했소. 기왕에 내 똥오짐 수발꺼정 다 들어주셨응깨, 몸이나 온전히 추스르고 떠납시다. 아자씨가 떠밀어도 안 나갈 것이요.”

“허면 맘대로 허씨요. 난 산으로 갈랑깨요.”

“산으로 가라?”

“아까막시 말씸얼 안 디렸소? 목매놔논 것도 봐야허고, 또 함양 강부자헌테 오소리럴 한 마리 잡아다 주기로 했는디, 오소리굴도 파야허요.”

“오소리도 잡소? 그것이 기름지고 몸에 좋다든디.”

옹녀 년이 들은 소리는 있어 아는 체 했다.

“그런깨 사람 몸에 보가 되는 갑습디다. 함양 강부자네 큰 아덜이 가심병얼 앓는디, 오소리가 그리 좋다고 그럽디다. 한 마리 잡아다 주면 쌀얼 한 가마 준다고 했소.”

“몸에 얼매나 존가넌 모르겄제만 비싸기도 허요이.”

“허니 가봐야지라우. 나넌 산으로 갈랑깨 아짐씨넌 돌아가시던

지, 양석언 있응깨, 혼자 더 몸조리럴 허시다가 가시던지 알아서 허시씨요.”

박가의 눈꼬리가 고집스레 일어섰다.

‘흐참, 얼굴언 순허게 생겼는디, 고집언 황소고집이구만이. 흐기사, 저런 고집이 있응깨, 사람도 안 사는 이런 골짜기에서 혼자 살제.’

옹녀 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드래도 억지로 떠밀려 쫓겨나듯 나가는 것은 싫었다.

박가는 나가라, 옹녀 년은 못 나가겠다는 실랑이는 아침 밥상을 물리고도 한참을 계속되었다. 어떻게든 박가를 구슬려 그 사내의 대물 아랫녁 살집에 가두어 놓고 조곤조곤 죽여놓고 떠나고 싶은 것이 옹녀 년의 속내였다.

아니, 포수 박가가 제 년의 아랫녁을 한번만 겪으면 제 쪽에서 제발 떠나지 말라고 사정을 하고 나올 것이라고 옹녀 년은 믿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을 삼아주겠다 어쩌겠다며 박가를 구슬리던 옹녀 년이 한숨까지 푹 내쉬며 무릎을 조촘조촘 움직여 당겨 앉았다. 박가가 그만큼 물러 앉았다.

“안 잡아 묵소. 안 잡아 묵을텐깨 도망가지 마시씨요. 이년이 그리 싫소?”

“아짐씨가 싫다고넌 안 했소.”

“허면 멋땜이 이년얼 대풍창 병자럴 보듯이 피허시오.”

“원래가 남녀칠세 부동석이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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