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노래 <696> 글던지 말던지...
가루지기 노래 <696> 글던지 말던지...
  • <최정주 글>
  • 승인 2004.02.16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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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뿌린대로 거두기 <14>

“그래라우? 허면 몸조리만 잘허면 사내노릇도 헐 수 있것소이. 이년이 내려가자마자 사골부텀 두어벌 구해서 고아 믹여야겄구만요.”

“흐흐, 글던지 말던지. 내가 보기에넌 앞으로 사내구실언 다했든디.”

“그까짓 사내구실이 대수다요? 어뜨케던 살아만 있으면 되제라. 이년이 세상에 태어나 그래도 찬물이라도 떠놓고 맞절얼 헌 서방님언 강쇠 서방님 빽이 없는디, 어뜨케던 살게 맹글아야지라.”

옹녀 년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병 든 서방님일망정 빨리 보고 싶어진 것이었다.

“흐기사, 자네의 아랫녁만 팔아도 서방님 병수발 쯤 못 들겄는가?”

“하먼요. 아까막시 박센이 오소리럴 잡으러 간다고 그럽디다. 박센이 오소리럴 잡으면 그것부텀 고아믹여야겄소. 아짐씨가 부탁했던 노리도 잡으면 날 주씨요. 내가 살라요.”

“호호, 글던지. 노리야 나헌테넌 박센얼 만낼 구실이었응깨.”

주모가 맞장구를 쳤다. 둘이서 반나절을 걸어 마천마을 앞을 지날 때였다. 옹녀 년이 싸늘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 잘난 양반놈덜언 어뜨케 살고 있소?”

“양반놈덜?”

“아, 이년얼 내떤지고 즈그들만 가뿌린 그 인정머리라고넌 한푼어치도 없는 양반놈들말이요.”

“그 양반덜이야 잘 살고 있제. 어제도 내 주막에 와서 닭 한 마리 잡아묵고 갔구만. 안 그래도 자네 말얼 해쌌드만. 인자넌 호랭이 헌테 살언 다 뜯기고 뼈만 남았일 것인깨, 봄이 되어 해동이나 되면 뼈라도 찾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자고 즈그들끼리 말해쌌드만.”

“흐, 쳐쥑일 놈덜. 서방님이 쪼깨만 좋아지시면 내가 그 놈덜부텀 작살얼 내뿌릴라요.”

“작살얼 내? 어뜨케?”

주모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계집이 사내를 작살내는 방법이 하나 빽이 더 있소? 그놈들의 연장얼 확 뽑아뿔리랑구만요.”

옹녀 년이 이를 득득 갈았다. 그런 계집의 머리 속으로 내가 맘만 묵으면 그까짓 사내놈덜 고태골로 보내는 것언 일도 아니요, 하는 생각이 흘러갔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제 년을 칠선골 호랑이 주둥이 앞에 내팽개쳐 두고 저희 놈들끼리 내려가 버린 조선비며 이선비를 요절을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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