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 신임 전주지검장
이동기 신임 전주지검장
  • 김은숙기자
  • 승인 2004.06.0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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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만의, 검찰만을 위한 검찰권 행사가 아니라 진실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1일 취임한 이동기 전주지검장의 각오는 남다르다.

 전북 지역 출신 검사장인 데다 과거 여러 차례 근무했던 인연도 있어 비교적 도내 실정에 밝기 때문이다.

 이 검사장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회로부터 무조건 분리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공동체 생활로 귀화시키는 것도 검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전북 출신 검사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 데도 불구, 고향의 지검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정읍에서 태어났고, 검사로 임관된 뒤에는 정읍지청장, 군산지청 부장검사, 전주지검 차·부장 검사로 근무한 적이 있어 유달리 인연이 깊습니다. 남다른 애정을 갖고 전북과 전주지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한 검찰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먼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사회악 척결에 앞장서겠습니다. 법과 질서를 파괴하여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에 대해 추상같은 법 집행으로 법의 엄중함을 보여줄 것입니다.

 특히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검찰권 행사를 통해 사회지도층 비리 등 각종 부정 부패사범을 척결하고 조직폭력배 등 민생침해 사범을 지속적으로 단속해 지역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 전주지검의 위상제고를 위한 운영지침은 무엇인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 확보입니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업무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도록 항상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검찰 업무에도 다양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만큼 전문지식 함양을 위해 직원들을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또한 인화와 단결이 없는 조직은 결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습니다. 인화와 단결은 우리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인화와 단결을 통해 서로 믿고 힘을 북돋우며 함께 업무를 추진해 나가는 ‘강한 전주지검’을 만들 것입니다.  

 - 검사로써 평소 갖고 계신 철학은 무엇인가요.   

 ▲‘판사는 검사가 그린 그림에 평가를 하지만 검사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창조적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남한테 베푸는 것이 없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는 범죄자를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것만이 검찰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리시키기 이전에 교화시키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방 차장검사로 재직할 때였어요. 강간치상 혐의로 한 대학생이 징역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고 어머니는 파출부였죠. 변심한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어느날 술을 많이 마시고 길가던 여자를 건들여 약간의 상처만 입힌 미수 사건이었죠. 피해자와도 합의를 본 상태인 데다가, 부모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길 것 같아 기소유예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어요. 만약 그때 그 학생이 징역을 살았으면 인생도 끝났을 것입니다.

  - 검찰내 ‘기획통’으로 평가받으며, 동기(사시 20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차장검사로 승진하는 등 선두주자로 알고 있습니다.

 ▲(웃음) 빠르다기 보다는 보조를 맞춘 것이죠. 능력은 부족하지만 검사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직무에 충실해 왔던 것 같습니다. 업무처리를 하면서 기준과 원칙에 맞게 절제시키고, 소신을 지켜 왔던 게 가장 큰 원동력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고향 검사장으로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지역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범죄가 무엇인지 항상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이를 척결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전북지역과 전주지검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지역을 위한 검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인 만큼 도민들께서도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박스> 이동기 검사장 ‘인생 엿보기’- “108배로 아침을 여는 검사장”  

 ‘108배’로 시작하는 그의 아침. 이 검사장은 고요한 절간에서 하루를 연다. 초저녁잠이 많은 대신 새벽잠이 없는 그는 일주일에 세번 정도 인근 절을 찾아 백여덟번의 절을 한다. 전주지검에 부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돌아가진 이후부터 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일선검사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업무 요구를 했거나, 검찰생활하면서 반성할 일이 있으면 참회하는 마음으로 절을 합니다. 정신·육체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지요.”

 가장 기억나는 ‘참회의 추억’ 하나. 지난 2000년 9월 창원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할 때다. 10월 출산 예정인 여검사에게 9월 말까지 ‘3개월 미제청산’이라는 사실상 무리한 지시를 한 적이 있었다.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여검사는 여러 날 밤 야근을 강행하다가 청사에서 산기를 느껴 급하게 병원에 실려가 예정보다 빠르게 출산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도 여검사는 임무완수를 못해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미안한 것은 오히려 이 검사장 자신이었단다.

 한양대 법대를 나온 그는 같은 대학 후배인 민주당 추미애 전 국회의원과도 절친한 사이다. 이 검사장이 4학년일 때 추 전 의원은 막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정읍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추 전의원 남편인 서성환 변호사와도 종종 함께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혹 정치에 입문한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검사장은 “한번 검사는 영원한 검사”라며 손사래를 친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군법무관 시절. 어머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자신의 모교인 칠보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외손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 검사장은 검찰 내에서 보기 드물게 ‘동기사랑(www.dongkisarang.com)’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 법률상식·제도를 소개하는 등 국민들에게 친숙한 검찰이 되기 위한 다양한 채널을 열어놓았다.

 지난 99년 서울지검 형사5부장 재직 시절 유명화가 국보급 미술품 1천여점을 위조한 일당 15명을 적발, 당시 미술계를 달궜던 천경자화백의 ‘미인도’ 위장의혹 사건 등을 지휘한 바 있다. 취미는 등산으로 부인과의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프로필  △1956년 정읍 칠보 출생 △1974 동북고 졸 1978 한양대 법학과 졸 1982 한양대 대학원 법학 석사과정 수료 1990 한양대 대학원 법학 박사과정 수료 △1978 제20회 사법시험 합격 △1980 육군 법무관 △1983 대구지검 검사 △1986 광주지검 목포지청 검사 △1987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1989 일본 경응대 법학부 연구원 △1992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1993 군산지청 부장검사 △1993 전주지검 부장검사 △1994 법무연수원 기획과 과장 △1995 법무부 송무과 과장 △1997 사법연수원 교수 (부장검사) △1999 서울지검 형사5부장 △2000 전주지검 차장검사 △2001 대전고검 검사(국정원 파견) △2002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2003 서울고검 공판부 부장검사 △2004 대검 송판송무부 부장검사 △상훈-1992 법무장관표창 업무유공, 2003년 ‘환경소송에 있어서 입증책임완화에 관한 연구’논문발표 법학논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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