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
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
  • 송영석기자
  • 승인 2004.11.04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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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알츠하이머병으로 점차 기억이 지워지는 부인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1997년의 ‘편지’, 98년의 ‘약속’을 떠올리게 하는 최루성 멜로지만 이 영화에서 흘리는 눈물은 ‘헤어짐’의 눈물이 아닌 ‘잊혀짐’의 눈물이다.

 사랑과 용서를 알려준 소중한 연인의 기억이 최근 것부터 서서히 잊혀진다면 무엇으로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영화를 통해 열연을 펼친 정우성과 손예진이 그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집자 주>

 수진(손예진)과 철수(정우성)는 수진의 건망증으로 인한 ‘콜라 날치기’ 사건으로 처음 만난다. 건설회사 사장의 딸과 건설현장 인부라는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이른 그들. 철수는 건축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언덕 위에 둘만이 살 집을 설계하는 등 달콤한 신혼생활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철수는 반찬 없이 밥만 든 도시락 두 개를 들고 당황한다. 수진의 건망증이 정신부터 서서히 죽어가는 알츠하이머 병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철수는 집안 곳곳에 메모를 덕지덕지 붙여놓는다.

 그러나 사랑의 기억마저 잊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진은 “행복할 때 헤어지자”며 철수를 떠나고, 철수는 수진이 손수 지어준 양복을 차려입고 그녀를 찾아나선다. 철수에게 진정한 사랑과 용서를 가르쳐준 수진에게 아직 사랑한다는 고백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정우성만으로 이미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감독 이재한)의 상업적 폭발력은 어느 정도 예약된 것이다. 그간 거친 이미지로 ‘여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정우성이 오로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져, 눈물을 보인다는 설정만으로도 영화는 이미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서 이재한 감독은 ‘관객과 함께 기억을 만들어 가고, 다시 추억하기 위해’라며 1시간 동안 ‘예쁜 화면’을 펼쳐놓는다. 이 때문에 ‘추억’을 곱씹을 시간은 매우 급박하게 다가온다. 죽음 자체를 직면하기보다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겨놓으며 이전의 멜로와 차별화를 꾀하는 점도 특징이다. 또한 멜로 전문 손예진과 멜로로는 처음 인사하는 정우성, 둘의 앙상블을 보는 것도 잔재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에서 사랑의 기억은 핵심 축으로 작용해 영화의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잃어버리는 알츠하이머 병 때문에 사랑하는 이부터 망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야기의 축으로 삼은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약속’이나 ‘편지’ 등의 최루성 멜로가 주로 불치병이나 헤어짐을 모티브로 삼은 데 반해 ‘정신적 죽음’, ‘망각’으로 슬픔을 극대화한다는 발상은 신선하고 세련됐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도 아쉬운 부분은 있게 마련. 이 영화는 중년 이후 세대에게 이 영화는 아슬 아슬한 ‘스릴러’ 영화로 변모할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 어느 순간 튀어나올 오버된 애정 장면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연출하느냐가 멜로의 중요한 변수이지만, ‘멋진 모습’에의 집착은 오히려 거북하다.

 물론 전작 ‘컷 런스 딥’에서 보여줬던 밤 장면의 연출력이나, 남성 캐릭터를 멋져 보이게 하는 감독의 능력은 더 커졌다. ‘청순한’ 손예진의 이미지에서 때론 에로틱한 이미지를 끌어낸 점도 훌륭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절제한 시나리오와 지나친 낭만적 연출은 불협화음이다. 평이하기만 한 대사의 톤은 그대로지만, 표정과 눈빛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안다는 점에서 정우성의 연기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고도 남는다.

 한편, 이 영화는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본 영화배급사 ‘가가’에 개봉 전 역대 최고가인 270만달러(약 31억원)에 판매돼 더욱 주목을 끌 듯 하다. 11월 5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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