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의 수산물이야기(1)
이강수의 수산물이야기(1)
  • 승인 2004.11.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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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이야기
  명태라는 이름에 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왕조 개국 250년경에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한 민(閔) 아무개가 명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250년경이라면 1641년경이고 인조(仁祖) 19년경이 된다. 그 무렵에 함경도에서 관찰사를 지낸 사람이라면 졸당 민성휘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른다.

 그는 병자호란(1636년)에 앞서 함경도에 관찰사로 부임했던 사람이다. 말로써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민성휘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민 관찰사가 명천군을 순시했을 때 생전 처음보는 물고기를 먹고는 이름을 물어 보았다고 한다. 태(太) 아무개라는 어부가 잡아 올린 물고기인데 아직 이름이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된 민 관찰사는 명천군의 명자에 어부의 성인 태자를 붙여 ‘명태’라고 그 물고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한편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고려시대에도 벌써 명태가 잡혔었고 사람들이 이를 북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북쪽 바다에서 오는 물고기라는 뜻이었을 뿐이며 정식 이름은 아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이름 없는 물고기는 먹는 법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명태 잡이는 부진상태에 있다가 민 관찰사가 이름을 지어준 후부터는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명태는 학명으로 Theragra chalcogramma(Lesson)라고 하며, 영명으로는 Alaska pollack 또는 Mentai라고한다. 우리나라의 방언에는 망태, 조태, 왜태, 애태, 애기태, 막물태, 강태, 은어바지, 섣달바지, 더덕북어 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대구(목) 대구(과) 명태(속)이다.

  명태는 우리나라 동해안, 일본 북해도, 오호츠크해, 태평양측 무리로 나누어 볼 때 그들 어군사이의 관계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명태는 강한 회유성(回遊性)을 갖고 있으며 원산만에서 북해도 서해안까지 회유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있는 바 있고, 이 때의 회유 속도는 하루에 약 10마일을 간 기록도 있다.

  명태는 12월부터 다음해 3월에 걸쳐 알을 낳으며, 1~2월 사이에 가장 활발히 알을 낳는다. 산란장은 동해안의 30~60m 수심이며(일본 50~200m수층), 저층에서 산란된 알은 떠 올라와 해면 가까이에 떠다닌다. 산란 시각은 특정한 때가 없다. 산란할 때의 수온은 섭씨 1~3℃범위이며, 산란기는 북쪽일수록 늦는 경향이 있다. 명태의 알은 옅은 황적색이며 구형(球型)이다. 알은 매우 맛이 있어 명태살 보다 고급 요리로 알려져 있다. 한 마리의 산란수는 40㎝ 크기가 25만개, 50㎝ 크기가 40만개, 60㎝ 크기가 100만개 정도이다.

 명태는 암컷이 수컷보다 크며, 성어에서는 약 2㎝가량 차이가 난다. 성적으로 성숙하는 크기는 수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일반적으로 34㎝전후, 연령 4~5세가 되면 성숙하며 3세에 성숙하는 것도 있다. 성숙기가 되면 암컷이 수컷의 2배까지 된다. 일반적으로 산란장에서는 암컷과 수컷의 무리가 수직적으로 나누어 분포하는 특성이 있는데 즉, 수컷 무리가 위쪽에, 암컷 무리가 아래쪽(깊은 수층)에 분포한다.

  성어는 서식해역에 따라 먹는 먹이를 달리하지만 저서 갑각류, 어류, 오징어류, 새우류 등을 주로 먹으며, 매우 탐식성이라 때때로 명태새끼들 까지 잡아 먹곤 한다. 또 이들 성어들은 산란기가 되면 먹이를 매우 적게 먹는 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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