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잘 입읍시다
옷을 잘 입읍시다
  • 승인 2005.01.0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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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법관이 재판정에서 법복을 입는 것은 법관으로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일 거지가 말끔한 양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면 아무도 그 사람에게 동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옷차림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은 이후로 옷은 굉장히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단순히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미모를 드러내는 것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자기 과시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 등 환경에 맞게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하다.

소풍가는 사람이 양복을 입고 가는 것도 꼴불견이 될 것이고, 다른 사람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가는 사람이 반바지에 슬러퍼 차림으로 간다면 그것 역시 결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상가(喪家)에 갈 때에 너무 화려하지 않게 입으려고 하고, 결혼식에 참석할 때도 예식에 맞는 옷을 입고 간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옆 동네에 정치인들이 수련회인지 연찬회인지를 왔다가 정유재란 시에 순국한 영령들을 모셔둔 '만인의총'에 참배를 왔을 때 체육복차림으로 와서 보는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힌 일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일이 겹칠 때가 많다. 그럴 때에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서 한 쪽을 먼저 해야한다. 우선순위를 잘 선택하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고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일 것이다.

연찬회가 주 목적이었다면 연찬회만 하고 갔어야 했다.

옷에도 용도가 있다. 저희 집 화장실에는 수건이 두 개가 걸려 있다. 하나는 얼굴을 닦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을 닦는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어디에 걸어 놓은 것이 얼굴을 닦는 수건이고, 어디에 걸어 놓은 것이 발을 닦는 수건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친구가 찾아와서 하룻밤을 자고 가는데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오는데, 보니까 글쎄 발 닦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것이다. 아마도 발 닦는 수건이나 얼굴 닦는 수건 모두 깨끗하기 때문에 무심코 사용한 모양이다. 그 친구가 알면 얼마나 찜찜할까 생각되어 그 다음부터는 발 닦는 수건은 밖에다 걸어두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실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옷이라 해도 그 용도가 다를진대 운동복을 참배하는 곳에 입고 온 처사는 썩 아름답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고전 구절에 ‘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글귀가 있다. '애비는 애비답게, 아들은 아들답게'라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아 처신하라는 글귀다. 옷을 입는 것에도 이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안효창<남원 원광한의원 원장,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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