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금병매 <272> 하루내 널 기다렸니라
평설 금병매 <272> 하루내 널 기다렸니라
  • <최정주 글>
  • 승인 2005.01.20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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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향의 반란 <28>

찬모가 와서 주인 어른이 돌아오셨다고 해서 큰 채로 나가자 나들이 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철비가 정좌를 하고 앉아있었다.

“시회는 잘 끝나셨어요? 아버님.”

“오냐, 모처럼의 나들이가 아주 즐거웠다. 다들 내 시가 젤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더구나.집에 별 일은 없었겠지?”

“그럼요. 별 일이 있을 리가 없지요. 태국이가 문단속도 일찍 했었구요. 저는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어요. 그래도 아버님이 안 계시니까 집안이 텅 빈 듯 허전해서 그런지 꿈자리가 뒤숭숭했어요.”

옥향의 말에 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느냐?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집을 안 비우마. 네가 그럴 것 같아서 시회가 아직 안 끝났다만 부랴부랴 왔니라. 헌데 태국이 놈은 어디에 갔느냐?”

철비의 물음에 옥향의 가슴이 뜨끔했다.

“찬모의 말이 뒤뜰 밭에 잡초를 뽑으러 갔다고 하던데요.”

“잡초를 뽑을 때도 되었지. 뽑고 나서 돌아보면 또 자라는 것이 잡초가 아니드냐? 그만 가보거라. 어제 과음을 했더니, 피곤하구나. 애비는 좀 쉬어야겠다.”

철비의 말에 옥향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제 방으로 돌아와 수틀을 붙잡고 앉았으나 태국이 놈의 얼굴만 수틀을 가득히 채우고 덤볐다. 어제 밤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후원의 별당을 빗자루를 들고라도 어슬렁거릴 판인데 놈은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가 먼저 찾아갈 수도 없는 옥향은 속으로 애만 태웠다. 해가 질무렵이었다.

태국이 놈이 장작 한 아름을 안고 별당으로 찾아왔다.

“하루내 널 기다렸니라. 헌데 넌 얼굴 한번 안 보여주더구나.”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는 태국이 놈을 향해 옥향이 투정 비슷이 말했다.

“제가 어찌 함부로 별당을 얼씬거리겠습니까요? 이놈도 오고싶어 안달이 났습지요만.”

“정말? 정말 너도 별당에 오고 싶어했느냐?”

옥향이 반색을 했다.

“그러믄입쇼. 멀리서 어른거리는 아씨의 그림자만 보면서 가슴을 태웠는걸요.”

태국이 놈이 소매깃으로 이마의 땀을 쓱 닦으며 대꾸했다.

“믿으마. 네 말을 믿으마. 저녁에 올 수 있지? 이따가 달이 중천을 넘어가면 아버님 방을 엿보다가 잠이 드신 듯 싶으면 내 방으로 오너라. 문고리를 걸지 않을 것이니, 기척을 내지 말고 방으로 들어오너라.”

“주인 어른이 아시면 어쩌시려구요? 주인 어른께 들키면 전 죽은 목숨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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