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극일·승일
반일·극일·승일
  • 승인 2005.04.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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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인 이기영의 『두만강』이나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을 읽어보면 지문과 대화를 막론하고 ‘왜놈’이 예사로 나온다. 필자는 그에 대해 대화엔 면죄부를 줄 수 있지만 지문은 ‘편집자적 해설’을 드러낸 것이어서 문학성 면에서 약점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일본제국주의는 독립군과 공산주의자 모두에게 타도의 대상이었다. 해방이후 북한에서 ‘미제국주의’가 ‘원쑤’의 대상으로 추가되었지만, 그만큼 일본제국주의는 한민족의 남북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긴 『두만강』과 『갑오농민전쟁』뿐이랴. 조정래의 단행본 12권짜리 대하소설 『아리랑』이 묘사하는 일제의 만행 역시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 조정래는 『아리랑』을 통해서 일제에 대해 “해방 50년-우리는 용서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제 보니 월북작가들의 편집자적 해설에 의한 ‘왜놈’ 표현이나 조정래의 그런 메시지는 문학적 가치 유무를 떠나 그보다 강하게 어필하는 어떤 힘이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고교 교사이기도 한 필자 역시 수업시간에 ‘일본놈’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이를테면 반일의 문학선생이다.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어 표기)의 날’ 제정 및 교과서 왜곡으로 폭발된 국민의 반일감정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펼쳐온 정부마저도 영토의 문제라며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등 그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해방 60주년이 된 오늘 왜 침략국 일본 때문에 이러한 울분과 혼란을 겪어야 하는지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일본이 ‘제버릇 개 못주는’ 100년 전 모습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전쟁범죄에 대한 뉘우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의 팽창주의를 은근히 돕는 미국의 태도이다. 전문가 진단에 따르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시켜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미국은 이제 그들을 도와 중국을 경계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한국은 미?일?중 강대국 놀음에 놀아나야 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그런 미국에 대해 한미동맹만을 외쳐대며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정부이고 나라라면 조선왕조 말기와 뭐가 다른 대한민국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노대통령은 동북아에서의 ‘균형자’ 역할을 천명했다. 정부 역시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언제 그랬냐 싶게 맛이 좋다며 일제 된장을 사먹는 아줌마, 일본만화에 열광하는 청소년, 술만 먹으면 일본어로 노랠 불러대는 노년층, ‘엔카’ 한곡 정도 알아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대학생들이 다시 즐비해지는 세태가 된다면 그래, ‘조센징’은 또다시 당해도 싸다.

이제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일본을 극복하여 이기는 전략에 몰두해야 한다. 그 전략의 실행만이 일본제국주의에 당한 설움과 고통의 감정적 한풀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일본인을 ‘왜구’라 얕잡아 보았듯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을 극복하고 이겨야 한다. 감정적 반일이 아니다. 이제 이성적 극일(克日)이요 경제적 승일(勝日)이어야 한다.

장세진<문학평론가, 전주공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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