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예제도
미국의 노예제도
  • 승인 2005.04.1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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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자유와 노예가 만든 나라라고 한다. 미국에 맨 처음 노예가 들어온 것은 미국에 첫 의회제도가 시작되었을 때 노예제도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동안(東岸)의 영국 최초의 식민지는 1607년 개척된 버지니아의 제임즈타운이다. 이곳에서 1619년 미국대륙 최초의 의회가 열렸다.

 ▼이것은 6명으로 이뤄진 참 의회(상원)와 20명으로 된 의회(하원)의 양원제다.하원에 해당하는 의회는 10개의 개척지에서 각각 2명씩 선출됨으로써 식민지의 자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같은 해, 이 땅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20명의 흑인 노예를 네덜란드 상선으로부터 사들였다. 그 후의 미합중국에 커다란 영향을 남긴 의회의 설립과 노예의 수입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사안이 아무런 모순도 없이 이뤄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신대륙에 끌려간 아프리카 노예의 수는 얼마나 될까. 1829년 어느날, 남대서양에서 상선을 만난 영국군함의 한 승무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 배의 화물은 미국대륙으로 옮겨지는 5백5명의 흑인 남녀로서, 17일 동안 55명이 죽어 바닷속으로 버려졌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갑판 안의 철창 속에 빽빽이 처박혀 있었으며, 밤이나 낮이나 누울 수 도 없고 자리를 바꿀 수 도 없다. 그들의 몸에는 마치 양과 같이 여러 가지 형태의 소유주의 낙관이 찍혀 있다」

 ▼16세기 이후 이와 같이 유럽의 상인에 의해 노예로서 신대륙에 끌려온 아프리카인의 수는 9백6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러한 노동력의 바탕 위에 위대한 나라와 경제력을 구축했다. 20년 전만해도 미국의 흑백차별은 공공연한 자세였으나 지금은 그러한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국무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급인사 그리고 사법부나 경제계, 스포츠 스타 등 흑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러고 보면 자유와 구속은 상반관계에 있지만 그 원초적인 맥은 같은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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