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기가 남아 있는데, 혁명 직전의 부분에서는 오직 사냥에 대한 것밖에 없었으며, 사냥을 하지 않는 날에는 「1789년 7월13일, 아무 것도 없음」「7월14일 (공백)」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7월 14일은 바스티유 감옥이 민중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말하자면 그는 정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느 역사가는 「그는 머리를 쓰는 일에는 곧 싫증을 낸다. 추밀회의에서는 졸기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국왕이 이런 상태이니 국정이 올바로 운영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루이 16세와 어느 소년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루이 16세와 왕비 앙뜨아네뜨가 북프랑스 랑스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돌아오다 파리의 루이 대왕학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학원에서 선발된 학생대표가 국왕 앞에 나와서 대관의 축하와 환영의 의미로 라틴어 시를 낭독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때 선발된 학생은 17세의 소년이었는데, 고전성적이 좋아 이 명예로운 역할을 맡았다. 화려한 복장을 한 군왕은 마차 속에서 의례적으로 시를 듣고 있었지만,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열심히 시를 읊고 있는 소년은 때마침 내리고 있던 비에 의복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17년이 흘렀다. 1792년 프랑스혁명이 진행되었을 때 턴플탑의 감옥에 갇혀있던 루이16세의 재판관이 바로 지난날의 시를 읊던 로베스 피에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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