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피의숙청
스탈린의 피의숙청
  • 승인 2005.05.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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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스탈린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도 드믈 것이다. 1934년 12월, 소령공산당 지도자 스탈린(1879∼1953)의 오른팔이었던 키 로프가 암살을 당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 배후관계가 조사됨과 동시에 소련 공산당 내의 불순분자에 대한 「대숙청」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그 때까지의 숙청(제명 내지 추방을 뜻하는 것)과 다른, 육체의 말살을 의미했다.

 ▼1938년 12월까지 숙청된 사람은 1천2백만 명 중에서 처형된 사람은 1백만 명,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은 2백만 명 이었다. 중앙위원도 예외가 없었는데 모두 1백30명의 중앙위원 중 98명이 체포되어 사살 되는 참극이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이 아무런 죄도 없이 처형되었다. 스탈린이 죽을 때 까지 숙청은 계속되었고 그 희생자는 무려 1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56년 2월 스탈린을 비판한 흐루시초프는 한 연설에서 1934년에 선출된 당 중앙위원 139명 중 98명, 즉 7할이 숙청, 사살되었다고 말했다.

 ▼스탈린은 이와 같이 「피의 숙청」을 단행하여 수많은 유력동지들을 처형한 만큼 자신에 대한 암살을 두려워하여 주위에 대한 경계를 엄중히 했다. 모스크바 근교 숲속에 있는 그의 비밀 별장에는 똑같은 형태의 침실을 4개씩이나 만들어 놓고 그가 어느방에서 자는지 모르도록 했다. 문도 그가 실내의 전동버튼을 누르지 않는 한 열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그가 뇌출혈로 죽은 것은 1953년 3월5일, 별장에서 쓰러진 것은 그 4일 전이었다. 언제나 정오가 지나면 일어나는 데도 그날 저녁때가 가까워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비병이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입실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관례에 따라 그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혈압이 있었기 때문에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을 의사로부터 금지되어 있었으나 그는 자기전에 사우나에 들어간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결국 그의 과잉경비가 구조의 손길을 늦게하고, 죽음을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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