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정승 이항복이 퇴청하는데 여염집 여자가 뭐가 그리 급한지 가마 앞을 가로질러가는 것을 괘씸하게 여긴 가마꾼이 그 여인을 밀쳐 엎어지게 한 사고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항복이의 집까지 쫓아와서 저 늙은이가 종놈을 시켜서 길가는 백성을 엎어지게 하였다고 하면서 저게 무슨 정승이냐고 소리소리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이 때 마침 찾아온 손님이 이 광경을 보고 아니 정승을 모독한 죄로 당장 엄히 다스릴 것이지 왜 당하고 만 있느냐고 하자 이항복은 내가 먼저 잘못했으니 화가 날 법도 하다고 하면서 껄껄 웃으며 여인을 달래서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전통사회에서 언론자유가 현대 못지않게 보장돼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 이들의 유머도 풍부했다. 아무튼 일국의 재상이 요즘보다도 권한도 많고 국사도 총괄하는 위치에서 이런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위의 당사자는 목숨이 붙어있는 것만도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정승은 오히려 자신의 부덕으로 돌리고 아량과 도량을 보여주고 있다.
▼국무총리와 경기도지사가 ‘정치적으로 한참 아래다’ ‘행정과 경제가 빵점이다’하면서 말 싸움을 하고 있다. 국민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보다. 옛 정치가들의 폭넓은 도량과 유머 감각을 배워 보면 어떨지.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