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고려말 충신 조원길 묘비 발견
순창, 고려말 충신 조원길 묘비 발견
  • 순창=윤영식기자
  • 승인 2005.06.22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에서 고려말기의 비로 추정되는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비(玉川府院君趙元吉墓碑)’가 발견돼 학계와 문화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도내에서 금산사의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예종 6년 1111년) 한 점만이 유일하게 고려비로 보고된데 이어 두 번째 발견이란 점에서 역사적·금석학적 의미가 크다는 주장이다.

 전라금석문연구회(회장 김진돈, 고문 이용엽)는 비석의 간지로 사용된 연호(洪武)에서 고려 2대왕 혜종의 이름인 무(武)를 피휘(避諱)하여 기록한 것과 당시 시대적 상황 및 여러 기록들과 부합되는 점을 ‘전라금석문연구’ 제5호에 소개하면서 금산사의 혜덕왕사진응탑비에 이어 도내에서 두번째로 고려비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려말 충신 조원길은 본관이 옥천(玉川 : 순창의 옛 지명)이고, 자(字)는 성중(聖中)이며 호(號)는 농은(農隱)이다.

 또한 시중(侍中) 장(璋)의 증손으로 부원군 전(佺)의 아들이며 공민왕 18년(1369)에 문화에 급제하여 검교, 시중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가 옥천부원군에 봉해진 연유는 1389년에 포은 정몽주, 운재 설장수, 독곡 성석린 등과 함께 창왕(昌王)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워 추충분의익대필성극복삼중벽상공신(推忠奮義翼戴弼成克復三重壁上功臣) 1등에 책훈(策勳)되어 옥천부원군에 봉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비’는 풍화가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어 비문내용을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쉽지 않으며, 정밀탁본을 실시한 결과 모두 42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석은 길이 약 2미터, 폭 5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부원군 묘소 앞 축대 둘레석으로 놓여 있던 것을 옥천조씨대종회 도유사(적성면 조종휴)가 처음 발견했다.

 발견 당시 묘표석의 상층부에만 문자가 새겨져 있어 비대석이나 가첨석을 설치하지 않고 비신석 자체만 땅속에 절반쯤 묻어 세운 비석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당시 정권교체기 신진세력에 동조하지 않았던 부원군의 가계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투박한 자연석에 비문을 새겨 형식을 갖추지도 못한 채 묘표석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여말선초 정권교체기 충신의 매운얼을 투박한 비석에 새길 수 밖에 없었음을 알게 해준다.

 비문의 내용은 ‘홍무24년(1391) 신미 신축삭 삼십일 임오에 전공판서 조원길과 옥천군부인 조씨(조유의 생모) 두 분을 함께 장사한 묘이며, 효자(孝子 : 부모의 제사때 자식을 지칭하는 말) 전(前) 부정(副正 : 고려의 관직) 조유(趙瑜 : 원길의 차자로 옥천군부인 조씨 소생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 찬서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정밀탁본결과 밝혀냈다.

 한편 부원군 묘역의 형태 및 배치는 고려시대 능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여 이번 고려비 발견과 함께 고려시대 묘역연구와 금석문연구 등에 훌륭한 근거자료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