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時代의 敎育을 생각하며
이 時代의 敎育을 생각하며
  • 박용준
  • 승인 2005.07.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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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낮게 드리워진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을 것 같이 축축이 젖어 있다. 비낀 햇살을 그렇게도 찬란히 빛나던 校庭도 오늘따라 그 육중한 무게를 더하고 있는 듯, 내다보이는 風景이 한 폭의 水彩畵처럼 보인다. 恒時 겪는 일이지만, 昨年이 오늘이던가 오늘이 昨年이던가, 해마다 新年이면 敎育에 대한 又日新을 되새겨 보건만, 한 해를 마무리하며 뒤돌아보면 늘 反復되는 것은 찌꺼기처럼 남는 悔恨뿐, 하지만 인간의 發展이 끊임없는 不足을 메꾸려는 데서 出發된다고 볼 때, 그 悔恨은 오히려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요즈음과 같이 支配的인 規範이나 價値가 없는 狀態로 규범이 너무 多樣한데다 그 어느 것도 모든 成員에게 拘束力이 弱하고 서로 다르며 矛盾 葛藤하는 아노미(anomie)상태에서는 사람들이 無氣力해지고 疏外感을 느끼며, 秩序와 法을 無視하고 자기 利益만을 追求한다. 따라서 社會的 混亂과 不安으로 各種 犯罪가 增加할 때면, 그 모든 原因을 敎育의 不在로 돌리곤 한다. 특히 暴力 및 경제 犯罪가 增加하여 社會에 끼치는 害毒이 매우 深刻할수록 使命感과 召命意識을 强調하는 敎育 從事者들에게는 더욱 더 괴롭다. 그러기에, 오천석님은 “교사의 祈禱”에서 敎師의 길이 平坦하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주여, 저는 이 일이 저에게 燦爛한 榮譽나 높은 權座나 뭇사람의 讚辭나 物質적 豊饒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길이 극히도 險難하고 지루하게도 單調로우며 뼈에 사무치게도 외로운 것임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차지하는 社會的 地位를 賤視하면서도 제가 完全하기를 期待하는 至難한 것임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때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落島에서, 때로는 다 찌그러진 몇 개의 단간 草家밖에 없는 山村에서 無知와 싸워야 하는 勞役임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外部에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敎師는 “힘도 없고 權力에 弱한 集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絶對 그렇지 않다. 교사는 權威와 自尊心을 먹고 사는 職業이라고 말하고 싶다. “無名敎師 禮讚論”에서 Henry van Dyke는 “ 有名한 교육자는 새로운 敎育學의 體系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無名의 敎師이다.” 라고 적었다. Abraham Lincoln 大統領은 “尊敬하는 선생님께”라는 글에서 “우리 아이에게, 남들이 다 틀리다고 말해도 자신을 믿을 수 있는 所信을 심어주시고, 弱한 자들에게는 부드러운 溫和함으로, 强한 자들에게는 膽大하게 對應할 수 있는 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注文했다. 그런데 오늘날 敎育의 現場은 어떤가? “先生은 있으되 스승은 없고, 學生은 있으되 弟子는 없다” 는 말로 表現된지 이미 오래다. 換言하면 公敎育의 威信은 墜落되고, 敎職은 天職 또는 聖職에서 賤職으로 轉落하고 말았다. 모든 植物이 土壤에서 營養分을 吸收하듯이 敎育도 滋養分을 흡수할 수 있는 環境을 造成해 주어야 한다. 그 役割을 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敎育 人的 字源部라고 생각한다. 모 大學敎授님은 “敎育部와 政治經驗이 없는 386世代가 敎育을 亡치고 있다고” 했다 要約하면 敎育政策의 不在라는 것이다. 最近에 國家 人權委員會는 “初等學校 日記帳 檢査 관행이 兒童의 私生活과 양심의 自由를 侵害할 소지가 크다며 改善의 意見을 表明해 論難이 일었고, 中 ? 高等學校에서의 頭髮의 自由는 學生의 基本的 權利이므로 學校에서의 頭髮制限과 團束은 敎育目的上 必要한 最小限의 範圍에서 이뤄져야 하고, 强制理髮 團束은 明白한 人權 侵害이므로 再發 防止를 위한 積極的 措置를 마련하라”고 勸告했다. 그렇지 않아도 全國 中 ? 高等學校에서 頭髮自由化 連帶를 結成하여 一線現場에서 頭髮指導에 골치를 앓고 있는 판이다. 한 나라에도 憲法이 있고, 學校에도, 校則이 있듯이 法의 테두리 內에서 自由와 人權도 享有할 수 있고 나아가서 自由와 人權도 存在한다고 생각한다. 學生들 스스로가 容儀를 端正히 하는 것도 責任과 義務라고 생각할 때, 人權과 自由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학생 자신이 學校나 社會 그리고 國家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敎育이 이뤄졌으면 한다. 이처럼 急變하는 周邊 環境이 가면 갈수록 敎師의 힘을 無力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敎育을 너무나 위태롭게 하는 것은 이 時代에 살면서 우리 모두가 분명히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삼기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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