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는 날, 나는 미안하다
詩읽는 날, 나는 미안하다
  • 송하진
  • 승인 2005.07.27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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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날부터 시 읽기를 비교적 좋아하였다. 시를 한참 읽다 보면 금방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시를 써보기도 하였지만 써놓고 보면 부끄러워서 바로 지우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나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주 읽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짬을 내어 시를 읽는 중에는 마음이 야릇해지는 때가 많다. 내 마음은 이미 까칠해졌는데 하면서 변해버린 나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 고장이 자랑하는 김용택 시인이 쓴 ‘그 여자네 집’을 읽고 있노라면 그리움과 바램, 아련함, 애잔함 등이 추억의 그림자처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하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아름다움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가. 왜 내 생각 속에는 그런 아름다움이 깃들이지 않는가.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 어린 날 누님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눈물처럼/서울의 착하고 남루한 별이여’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집에 실린 한 구절이다.

 별을 저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그렇구나. ‘내 거기서 태어난 그대 어둠이어/내 불꽃보다 그대를 사랑하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그대 어둠이어’ 중 한 구절이다. 어둠을 사랑한단다. 그럴 수 있겠구나. 사랑해버려야겠지.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물소리는 흰 새때를 날려 보냈고/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울음은 강을 만들었다/너에게 가려고’

 안도현 시인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는 시집에 실린 ‘강’의 일부이다. 멋지다. 시를 읽는 시간은 사실 즐겁다. 나를 발견하게 하고 그래서 미안하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히 내 자신이 조금은 숙성해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상식과 가식과 수식으로 가득 찬/내 일상의 남루한 옷을 벗고/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오늘 밤,/별들의 애잔한 미소를 볼 일이다.’ 두렵고 떠리는 마음으로 항상 하늘을 볼일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항상 반성의 자세를 갖기 때문에 버텨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종기 시인이 쓴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냄새가 난다’의 한 구절을 읽는 소회이다. 내가 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 시간만큼이라도 즐겨 읽는 시집들을 다시 보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 아닐까.

 새로 시집을 사본지가 꽤 오래된 듯 하다. 시간을 내어 언제 서점을 가봐야 할 것 같다. 시집을 사러가는 시간만큼은 행복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서점의 모든 시집을 다 살 수는 없겠지만 서점에 서서 주인의 눈치도 적당히 보면서 읽는 시의 맛도 제법 괜찮으리라.

 ‘내 가난함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배부릅니다/내 야윔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살이 찝니다/내 서러운 눈물로/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새벽밥같이 하얀/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김용택 시인의 ‘세상의 길가’ 전문이다. 느낌이 의미와 함께 너무 좋아 마지막으로 읊으면서 자판에서 손을 뗀다.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장.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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