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이 자랑하는 김용택 시인이 쓴 ‘그 여자네 집’을 읽고 있노라면 그리움과 바램, 아련함, 애잔함 등이 추억의 그림자처럼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하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아름다움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가. 왜 내 생각 속에는 그런 아름다움이 깃들이지 않는가.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 어린 날 누님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눈물처럼/서울의 착하고 남루한 별이여’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집에 실린 한 구절이다.
별을 저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그렇구나. ‘내 거기서 태어난 그대 어둠이어/내 불꽃보다 그대를 사랑하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그대 어둠이어’ 중 한 구절이다. 어둠을 사랑한단다. 그럴 수 있겠구나. 사랑해버려야겠지.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물소리는 흰 새때를 날려 보냈고/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울음은 강을 만들었다/너에게 가려고’
안도현 시인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는 시집에 실린 ‘강’의 일부이다. 멋지다. 시를 읽는 시간은 사실 즐겁다. 나를 발견하게 하고 그래서 미안하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히 내 자신이 조금은 숙성해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상식과 가식과 수식으로 가득 찬/내 일상의 남루한 옷을 벗고/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오늘 밤,/별들의 애잔한 미소를 볼 일이다.’ 두렵고 떠리는 마음으로 항상 하늘을 볼일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항상 반성의 자세를 갖기 때문에 버텨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종기 시인이 쓴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냄새가 난다’의 한 구절을 읽는 소회이다. 내가 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 시간만큼이라도 즐겨 읽는 시집들을 다시 보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 아닐까.
새로 시집을 사본지가 꽤 오래된 듯 하다. 시간을 내어 언제 서점을 가봐야 할 것 같다. 시집을 사러가는 시간만큼은 행복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서점의 모든 시집을 다 살 수는 없겠지만 서점에 서서 주인의 눈치도 적당히 보면서 읽는 시의 맛도 제법 괜찮으리라.
‘내 가난함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배부릅니다/내 야윔으로/세상의 어딘가에서/누군가가 살이 찝니다/내 서러운 눈물로/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새벽밥같이 하얀/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김용택 시인의 ‘세상의 길가’ 전문이다. 느낌이 의미와 함께 너무 좋아 마지막으로 읊으면서 자판에서 손을 뗀다.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지원단장. 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