望鄕의 언덕
望鄕의 언덕
  • 승인 2005.08.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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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광복 60년을 맞는다. 광복 60년의 감격은 물론 일제의 패반에서 벗어난 조국광복이 첫째다. 그러나 일제통치에서 지나온 나날들을 생각하면 이런 감격에 앞서 원한의 상처가 더 크다. 한반도는 말할 것 없고 동양 전역의 전쟁터에 내몰린 우리 동포들의 희생과 피맺힌 한을 어떻게 광복 60년의 감격으로만 다 채울 수 있는가.

▼지금 러시아와 일본간의 북방영토 반환문제로 시비가 일고 있는 사할린(樺太)도 2차대전 중 우리 동포들의 엄청난 피와 눈물을 갈아마신 원한의 땅이다. 1938년에서 45년까지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북해도를 비롯한 사할린 탄광 등에 끌려간 우리 동포들이 자그마치 15만 명이다. 그 모두 죽음의 석탄을 파내는 강제사역을 강요당했다.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 다시 규슈(九州) 등지로 끌려간 10만 여 명 외에 1945년 광복을 보고도 5만 여명이 사할린 땅에 억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동포가 1163명에 불과하다니 남어지 5만명 까까운 동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동안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들 망향의 원한이다.

▼이번 광복 60돌을 맞아 불교 조계종 대흥사 몽산 스님과 국회 한명숙 의원(열링 우리당)이 주축이 되어 사할린으로 징용되었다가 귀국하지 ?한채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져간 동포들의 위령제를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광부의 도시라는 러시아 말)) 망향의 언덕에서 거행했다는 소식이다. 망향의 언덕은 이 광부의 도시에서 남녁의 바다건너 조국을 바라보며 한숨과 눈물로 망향의 얼을 달랬던 언덕이다. 광복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런 원한의 땅이 아직 우리에겐 있다.

▼지난 노태우 정부 때 사할린 동포 모셔오기, 사할린 동포 집 지어주기 운동이 광범하게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 대부분 사할린에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상당한 수의 노인들이 따뜻한 고국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그때만 빤짝,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냄비뚜껑 같은 냉,온이다. 너무나 빨리 식는 우리의 동포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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