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가족상봉
화상 가족상봉
  • 승인 2005.08.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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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사람들은 사진 한장으로 오래 떨어진 시름을 달랬다. 신랑을 멀리 공부길에 보낸 새댁은 빛바랜 신랑 사진 한장을 벼개머리에 놓고서야 잠을 이뤘다. 그것도 모자라 사무치게 그리우면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야 직성이 풀렸다. 이것이 한국사람에 체질화된 운감(殞感)문화다. 실상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영감으로 상대의 체취를 느끼는 것. 한국사람이 이 운감문화에 도가 텄다고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말했다. 제사도 그런 운감문화의 연장이라 했다.

▼이런 운감문화에 도가 튼 한국인라면 사진이나 화상(畵像-TV)은 이보다 한층 깊은 실체다. 그래서 운감문화가 영적이라면 사진과 화상은 하나의 실체에 가장 접근된 현상이다. 엊그제 있었던 남북 이산가족의 화상상봉은 바로 그런 한국인들의 생생한 운감문화 현장이다. 남북 40 이산가족 226명이 서로 부모형제의 안부를 확인했다.

▼"손 한번 잡았으면 원도 한도 없겠네" 어느 이산가족은 화면을 만지며 눈물로 외쳐댔다. 모니터에 돌아가신 부모님 영전을 보며 큰 절을 하고 통곡하기도 했다. "오마니 여기 보시라요. 제발 한번 보시라요." 50인치 대형 화면 속의 북측 아들은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아들 쳐다보가를 애타게 외쳐댔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그 어머니는 작년 치매에 걸려 아들의 이같은 목메인 울부짖음도 들을 수 없었고 화상에 비친 아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남측 가족상봉실에서 휠체어에 힘겹게 앉아 있는 김매리 할머니(98)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딴곳만 바라봤다. 50여년간 꿈속에서 찾아 헤매든 북의 두 딸을 화상 앞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김 할머니가 북의 두 딸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늙어 있었고 너무 늦어 있었다. 그리고 오마니를 불러대는 아들을 그저 멀건히 바라보고만 있던 남쪽의 어머니도 너무 늙어 있었다. 이들 남북의 모든 이산가족들이 혈육의 정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늙어가고 있었고 너무나 늦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이산가족 1세들의 비애다. 아직도 12만여 명이나 남았다는 이산가족, 그들이 더 늙기 전에 계속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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