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프레레 감독
본프레레 감독
  • 승인 2005.08.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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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는 아무레도 지난 2002년 서울 월드컵대회가 가장 전성기였던 것 같다. 물론 주최국 보너스로 본선진출도 대견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월드컵 4강 들기가 낙타 바늘구멍으로 비유될 만치 어려운 관문을 한국축구가 8강을 넘고 4강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전국민들의 열광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Red Korea"의 붉은 물결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 서울 광화문 전체를 덮었으니 말이다. 그 열광의 인파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했다.

▼점잖키로 소문난 파리의 르몽드도 그의 특파원 르포에서 제2차 대전의 영웅 드골장군의 파리 개선문 퍼레이드를 능가하는 장관이라고 표현했다. "누가 이 많은 군중들을 이런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가" "누가 이 많은 사람들을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르게 하고 있는가" 미국의 슈퍼볼을 참관한 어느 시인의 감탄 그대로다.

▼현대스포츠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감탄시다. 스포츠는 선수와 감독의 합작품이다. 어느 스포츠 평론가는 감독이 6이라면 선수가 4라고 감독의 역할분담에 더 무게를 둔다. 또 어떤 스포츠 과학자는 선수 6에 감독 4로 선수에 더 비중을 두기도 한다. 어떻든 한나의 완벽한 경기는 감독과 선수의 완전한 합작품이라는 게 정설이다.

▼2002년 서울 월드컵의 클라이멕스는 4강 진출의 고비인 한국과 이태리의 한판 승부였다. 이때 박지성이 이태리 문전으로 날라온 볼을 살짝 오른 발로 상대 수비수를 페인팅하고 왼발로 넷트를 가른 장면은 100만불 짜리다. 이 장면을 본 히딩크 감독이 골인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한 권투의 어퍼커트 세레머니도 100만불 짜리다.

▼엊그제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서울 예선에서 우리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1대0으로 져 연속 사우디와 두 게임 모두 졌다. 축구전문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팀의 무기력한 졸점임이 훤히 드러난다. 이런 경우 어디에 결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봄푸레레 입슬이 바짝바짝 타는 것이 화면에 목격되었다. 봄푸레레도 히딩크처럼 영예로운 퇴진이 되었으면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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