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구정승하고 부르자 구치관이 네하고 대답하자 구정승인 신숙주를 부른 것이라며 구치관에게 벌주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신정승하고 부를 때 구치관이 대답을 하면 신숙주를 불렀다며 또한 벌주를 내린다. 이렇게 벌주를 주는 식으로 술을 권해 서로 취하게 만들어 둘 사이를 자연스럽게 화해시키고 있다.세조의 대단한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전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가 종영됐지만 이 때 동인이니 서인이니 또는 대북파·소북파하면서 당파싸움이 극심하고 있다. 어느 날 조정에서는 서로 갈라져 공리공론만 벌이고 있었는데 이항복이 뒤늦게 참석했다. 한 대신이 웬일로 늦었느냐고 이항복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항복은 마침 오는 길에 삭발한 승관(僧官)하고 신낭이 없는 환관하고 싸우고 있었는데 승관은 환관의 신낭을 쥐고 있고 환관은 승관의 머리털을 쥐고 있었다. 승관은 머리 털이 없고 환관은 신낭이 없기에 이처럼 아무런 소득이 없는 공리공론만 일삼는 당쟁을 이렇게 풍자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만 숙연해졌다고 한다. 유머 한 마디로 긴장과 갈등을 풀어간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적지않다.
▼흔히들 서양은 유머가 풍부하고 동양사람은 유머감각이 적다고 한다.오늘날 우리 정치판을 들여다보아도 정치 유머란 찾아볼 수가 없다. 욕설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아니면 싸움판이다. 엊그제 국회 예결특위에서 장관과 국회의원이 설전 끝에 욕설까지 나왔다고 한다. 참 멋없는 정치인들이다.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