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가 남긴 것
카트리나가 남긴 것
  • 전정희
  • 승인 2005.09.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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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의 여름은 카트리나라는 이름과 함께 허리케인의 계절로 역사에 남을 듯하다. 올해를 위해 준비해 둔 22개 태풍의 이름이 동날 지경이라고 하니 소문나지 않은 태풍들까지 합하면 가히 태풍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제물이 된 뉴올리언즈는 그 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매력있는 도시였다. 유럽풍 건물과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프렌치 쿼터, ‘마르디 그라’ 축제 때면 온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들뜬 열기, 거리 어디에서나 울려 퍼지는 재즈풍의 음악, 길거리에서 멋지게 탭댄스를 추던 흑인소년들의 모습까지 남부의 정겨움을 간직한 도시였다.

 이러한 뉴올리언즈를 통해서 카트리나는 자연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사회가 감추고 있던 치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데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공교롭게도 둑이 터진 폰차트레인 호수는 흑인거주지역을 덮쳤다. 그들은 허리케인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자동차가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며칠동안 외지에서 머물기 위한 자동차 운영비와 모텔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피하지 못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적한 대로 “이번 참사는 인종과 가난이 묶여있는 문제”이며 미국에서의 흑백 인종차별은 그대로 빈부차별로 연결된다.

 흑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매맞으며 팔려온 이래 경제적으로 사회의 밑바닥을 벗어나 보지 못했다. 미국을 여행하다가 도시나 그 주변지역에 건물이 낡고 분위기가 음산해서 두려움조차 느껴지는 지역이나 동네를 만난다면 그 곳은 흑인거주지역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부자나라라는 초강대국 미국에서 흑인들은 인간의 반열에 제대로 오르지 못한 인종이었다. 미국의 지배층이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워싱턴 포스트 조사에서 피해자들이 흑인이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대응을 늦춘 것으로 보인다고 응답한 71%의 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다.

 흑백으로 분명하게 갈린 계층간의 갈등은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타산지석이 된다. IMF 이래 중산층이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빈부격차는 한층 심화되었고, 계층간의 반목과 질시가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 부분을 늘렸다고 한다.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근본적으로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고민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민주당 존슨 대통령 행정부 때인 1960년대, 빈곤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연방정부가 복지, 주택, 교육 등에서 직접 지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 때에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아예 책정되지 않아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강한 자는 항상 강할 것인가? 그렇지 않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에스파니아, 포르투갈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그 힘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거대 기업도 무너지고 자손만대까지 갈 것 같은 부와 권세도 역시 그러하다. 자연과 인간을 막론하고 장단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는 성주괴공의 순환주기에 따라 변화를 거친다. 강한 자가 그 강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약자를 핍박하고 억누름으로써가 아니라 함께 키워주고 북돋워주는 공생공영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카트리나 재해현장에서 울부짖는 흑인들이 있음으로 해서 백인사회도 역시 굴러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미국의 지도층이 진심으로 깨닫기를 바란다. 그리고 카트리나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 미국사회의 이중성이 남의 나라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전북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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