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립다
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립다
  • 진봉헌
  • 승인 2006.02.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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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 중에서도 대법관의 존재는 남다르다. 최고법원의 판사라는 역할 이외에도 사법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대법관이 무엇이 법인가를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법관의 역할이외에도 법적 정의의 추구를 위하여 세속적 욕구를 희생하는 구도자의 역할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분들의 퇴임 후의 행적을 보면 실망스럽다. 법률기술자로서의 풍모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의 퇴임 대법관들은 그동안의 지위와 경력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해 하고 있다. 최근에 대법관을 퇴임하면서 참회의 퇴임사를 하신 분이 침이 마르기도 전에 법무법인의 대표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볼썽사납다.

 미국에서 대법관을 종신제로 하는 이유도 대법관이 된 후에는 끝까지 대법관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게 하려는 고육지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한 번 대법관이 된 분들은 6년의 임기를 마친 후에도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계속 연임하는 불문율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제도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주체의 실존적 결단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대법관이 되려는 분들은 국가를 위해서나 사법부를 위해서나 비상한 각오가 없으면 스스로 사양해 줬으면 좋겠다. 법적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순교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이 대법관이 되기를 희망한다.

 세상이 세속화되면 될수록, 세상이 황금만능주의의 극단으로 가면 갈수록, 사회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터지지 않으려면 지도층의 남다른 희생과 모범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양극화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법조의 어른들이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 양극화는 경제적인 처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마저도 그 모든 것을 팔아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태에서 무슨 수로 인간들의 무한한 탐욕을 만족시키겠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명예를 가진 사람은 명예를,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지혜를 ,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그리고 부를 가진 사람은 부를, 각각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만드는 길만이 양극화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각각의 그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다극체제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법조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는 자명해 진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이미 이러한 점을 솔선수범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신문 방송에서 청빈법관으로 수식하며 이 시대의 사표로 칭송하는 조무제 전 대법관은 35년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모교인 동아대학교에서 후배를 가르치고 계신다. 그 분은 대법관으로 근무하시는 동안에도 4급 상당의 비서관을 둘 수 있는데도 임기 내내 두지 아니하였고, 임기 중 두 세 번의 해외시찰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았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출퇴근이 몹시 불편한 용인 쪽에서 단신으로 사셨다고 한다. 대법관 취임 시 재산이 7천만원이었던 그 분인들 재물에 욕심이 없었을까. 그러나 법조인으로서 당당히 걸어야 할 길에 대한 소신이 있었기에 그러한 고도의 결백증에 가까운 절제와 희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본인과 그 가족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 아마 가장 힘든 것은 예외로서, 또는 국외자로서의 소외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분의 솔선수범은 법조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거칠어진 심성을 순화시켰다.

 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립다. 범부로서 세상사에 찌든 필자가 대법원만은 조무제 전 대법관 같은 분들이 다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것은 너무 속이 뻔한 이기심일까?

<전주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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