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에게 커다란 예술적 지평을 보여준 이는 미국의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다. 그는 우연음악(챈스뮤직)을 통해 예술의 비결정성 즉 텍스트의 고정성을 부정한 행위 지향적인 예술을 열어보였다. 1952년의 작품 <4분 33초>는 그의 대표적인 행위예술이자 해프닝의 서곡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종종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정확히 4분 30초가 되자 무대에서 퇴장한다. 멋진 피아노 공연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시간이 경과될수록 자신들의 기대에서 멀어지자 객석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존 케이지는 바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자기의 작품으로 소개한 것이다. 이 같은 존 케이지의 탈중심화된 예술활동은 백남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3년 독일에서 연 첫 개인전은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이다. 예술의 영역에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을 끌어와 이른바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서구의 오랜 전통인 도제적 훈련이 아니라, 선사를 만나면 선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이 성큼 예술세계의 각자(覺者)가 되었다.
일상과 지식과 예술이 행복하게 만나기를 우리는 꿈꾼다. 지식과 예술이 일상 밖에 있기 때문이다. 21c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야 하듯이, 일상이 지식과 예술의 세계 안에서 행복하게 공존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소프드웨어에서 다시 아트웨어로 문화적 코드가 점차 변하는 현재의 문화현상에서 그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백남준은 ‘썩은 세계’에서 예술을 해 감동과 놀라움을 주고 그 세계를 떠났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예술에서 혁명적 하이브리드적 기법만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의 정신세계와 사유방식을 통해 우리시대의 문화적 심지를 돋우는데 힘을 찾아야 한다. 예술의 불꽃을 세워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환하게 여는 이 정신이야말로 그의 힘이었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을 알아야 할 대목이다. 오늘의 불안정은 이미 내일의 새로운 지평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작가·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