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통신언어’- 국어의 또 다른 얼굴
⑥ ‘통신언어’- 국어의 또 다른 얼굴
  • 이원희
  • 승인 2006.03.02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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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안냐세염 초딩 중딩 에블바디 방가 즐팅 디따 잼있어여’라고 하면 ‘시방 무신 소리여?’ 시골 노인은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동시대에 우리는 언어공동체가 아닌 말문 닫힌 사회를 맞고 있다. 우리말인지 영어인지 알 수 없는 이 말이 오늘날 통신언어의 한 모습이다. 통신언어는 인터넷의 폭발적인 사용으로 우리 언어의 가족원이 되었다. ‘e-스타일’로 불리는 통신언어는 네티즌들이 원활한 통신을 위해 경험적으로 얻은 어떤 하나의 틀에서 창조해낸 언어다. 언어의 일반적 성격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간이화로 틀을 만든다. 되도록이면 쉽고 간편하게 언어가 변화되는 것이다. 가령, ‘삭월세’→‘사글세’, ‘즘승’→‘짐승’, ‘연탄’→‘탄’ 등은 모두 언어의 간이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통신언어는 언어의 간이화를 더욱 극대화한 언어다. 곧 ‘최소노력의 원리’가 적용된 언어다. 그러자니 자판을 두드려 쉽게 의사소통을 꾀할 수 있도록 기존언어가 변형되기 일쑤다. 게다가 송신자의 표정이나 상황, 행동까지 덧씌우는 이른바 이모티콘(이모션과 아이콘 합성어)이랄지, ‘우캬캬’, ‘푸헐헐’, ‘하하’, ‘호호’, ‘히히’, ‘낄낄’ ‘ㅋㅋ’ 등 다양한 웃음의 정서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통신언어는 문자를 소리화, 행동화, 맥락화한다. 통신언어의 가지치기도 만만치 않다. 가령, ‘안녕하세요’가 ‘안냐세염’, ‘안나세요’, ‘안나째요’, ‘안녕하세욧’, ‘어셥셔’, ‘어솨’ 등으로 분화되어 나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창조적 표현력과 순발력이 가동된다.

 21세기를 주도해갈 유력한 도구가 컴퓨터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오락 등 다양한 사이버 활동이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통신언어의 발달은 지극히 당연시된다. 그리고 주로 청소년층이 통신언어를 구사하는 주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문화적 배려가 마뜩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그들만의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가동해 송신자와 수신자 간에 ‘끼리문화’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어떤 주제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나 신변적인 내용에 국한된 통신대화는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통신언어의 긍정성과 순기능적 측면을 인정한다 해도 현재 우리말을 심하게 왜곡하는 데는 반성할 점이 많다. 컴퓨터 통신언어,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 신세대에 의해 주도되는 언어왜곡과 오염은 장차 이들의 언어가 표준어가 되는 시대에서는 국적불명의 소통불능 언어가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언어생태학 연구자들은 환경의 오염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듯, 언어가 오염되면 인간의 정신에 심각한 위기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언어재앙이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에 대한 경종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대학 답안지에도 통신언어가 종종 발견된다. 정보시대에 통신언어는 불가피하겠지만 통신과 일상의 공간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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