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지아비 밭 갈러 간데
11. 지아비 밭 갈러 간데
  • 이동희
  • 승인 2006.03.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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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아비 밭 갈러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반상을 들오되 눈썹에 맞초이다

 진실로 고마우신 이 손이시나 다르실까.

 

 -주세붕(1495~1554)「지아비 밭 갈러 간 데」전문

 

 오륜(五倫)을 이야기하면 시대성에 눈먼 청맹과니 인간으로 취급 받기 쉬운 시대다. 오륜 중에서도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민감한 인간관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 덕목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어질 수 있는 무촌(無寸)의 경지-부부관계의 위험성과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궁극적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금도(襟度)를 보여주는 덕성이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부부관계가 최소한의 예의마저 무시하는 것을 밀착된 애정으로 오해하거나, 지배와 복종의 관계인 여필종부(女必從夫) 등 아직도 전근대적인 종속관계로 착각하거나, 일방적인 시혜나 봉사로 오인하면서 부부관계에 불협화음을 양산하고 있다. 장미전쟁으로 불리는 부부간의 불협화음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부부는 유별하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길뿐이다.

 손님을 대접하듯 남편을 공경하는 아내의 마음씨를 그린 주세붕의 시를 두고 전근대적인 부부관계를 해석하는 것에서 머문다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후한(後漢) 때 양홍의 아내 맹광이 남편을 지극히 섬겨, 밥상을 들되 눈썹에 가지런히 되게 높여 들었다는 고사에 담긴 진실은 당대적 진실이요 부부관계였다. 이를 곧이곧대로 직역하여 아내를 하녀 부리듯이 홀대하는 근거로 삼는다면 그 가정이 장미전쟁을 넘어 핵전쟁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요즈음은 오히려 남편이 아내 섬기기를 맹광처럼 하는 가정도 흔치 않다. 아내의 속옷까지 빨아 대령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식사준비야 집안청소는 물론 장보기와 아기돌보기까지 남편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여권의 시대요, 여성 존중의 풍토가 만연해 가고 있는 현대다. 맞벌이-부부노동의 시대에 남편의 일이 어디 따로 있으며, 아내의 일이 어디 별도로 정해져 있겠는가? 일인 삼역 사역을 해냈다며, 지난 시절을 회한으로 쓸어내리는, 중년을 넘긴 아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문학의 가치와 문학작품의 구조는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시대적 산물이다.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는 한 편의 텍스트에 담긴 메시지를 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음미하며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문학의 구조를 역동적 구조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시를 대한다면, 고리탑탑하고 역겨운 봉건적 윤리규범을 담은 작품이라고 매도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성의 미명 아래, 혹은 현대성의 섬광 속에 묻혀가고 잃어버리기 쉬운 가정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삶의 가치를 재음미할 수 있는 단서로 삼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문학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에 머문다면 세상의 모든 사랑은 꽃을 피우지 못하여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본질로 하는 생명체다. 그 사랑의 본질이 바로 배우자의 머리에 앉은 티끌을 집어주는 ‘관심’이요, 배우자에게도 예절을 다하는 ‘존경’이요, 배우자의 존재 아래 나를 두는 ‘이해’요, 사람됨의 자격과 능력을 뜻하는 ‘책임’이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업인 ‘봉사’가 되는 것이다.

 지아비에게 드리는 밥상을 눈썹에 맞추어 높이 올리는 존경과 감사의 예절을 갖춘 아내의 뜨거운 사랑을 아랫목에 앉은 채로 받기만 하는 남편은 없다. 본질에 충실한 사랑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본질에 충직한 가정은 남편과 아내를 차별하지 않는다. 본질에 합당한 부부관계는 지배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한다. 서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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