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가 소리축제를 치르는 뜻
전주가 소리축제를 치르는 뜻
  • 곽병창
  • 승인 2006.04.10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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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축제를 맨 처음 생각해내고 나서 그 의미심장함에 모두들 무릎을 쳤다. 그리고 그 이름을 ‘전주세계소리축제’라 붙이면서 지역의 이름과 축제의 이름이 이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들 좋아했다. 그 의미심장한 뜻, 그리고 지역 이미지와 축제 이름의 절묘한 궁합에 대해서 이제는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이 이름의 맨 앞을 차지하는 ‘전주’가 정작 이 축제와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해마다 예산 편성하는 철이 오면 전주를 지역구로 두지 않은 대부분의 도의원들로부터 왜 막대한 도비를 들여서 전주시만 홍보하고 전주시민만 즐기는 축제를 만들고 있느냐는 질책을 듣는다. 도비지원금이 전체 예산의 칠십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전주시의 예산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심지어, 전주 이외의 시군으로 축제의 권역을 넓혀서 14개 시군의 공연장, 회관 등지에서 동시에 축제가 열리도록 하고 그 이름도 ‘전북소리축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필자는 일부 광역시를 제외하고, 광역자치단체 전체를 공간적 대상으로 한 공연예술축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도 그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을 터이니 그에 대한 긴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첫 해 이후로 전주시의 지원이 끊겨 있는 이 기이한 예산구조는 빨리 청산해야 한다. 전주시는 바야흐로 전통문화와 관련한 야심에 찬 프로젝트를 세워나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전주는 전주의 가장 강력한 전통문화의 표상으로서 ‘소리’와 관련한 사업들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소리와 관련한 하드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과, 소리축제와 같은 관련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확대, 지원하는 일이 곁들여져야 한다. 또한 시민 전체가 소리에 대한, 나아가서 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호가가 되게 해서 이 지역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예술 공동체로 만들어 갈 장기적 시민교육프로그램을 수립, 가동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전주시의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 사업 중에서 소리 테마공원, 소리광장, 대사습청 등 소리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관련 이벤트를 키워나가려는 계획이나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축제에 대한 현실적 지원은 곧 전주시의 일상적 시민문화를 개변하겠다는 의지와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시민의 일상적, 기층적 문화를 바꾸는 일은, 전통문화중심도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다른 어느 것보다 절박한 일이다. 소리의 고장임을 자처하면서도 삼십 년 넘게 체육관에서 대사습을 치르고 있는 도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짓는 아파트들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리고, 도시의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러브호텔과 향락산업이 전국 어느 도시보다 잘 발달한 이 도시에서, 진정 전통문화가 중심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제라도 그 기층의 문화를 바꾸는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수한 선진사례들에서 우리가 진정 배울 것은, 그 도시의 외양과 행정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그 주민들의 문화적 토양이다. 일터 바깥에서의 그들의 일상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그들이 가족, 이웃과 더불어 누리고 있는 일상적 삶의 모습이 얼마나 문화적인가? 두말 할 것 없이 그 생기 넘치고 건전한 일상문화의 토양이 모든 축제의 밑바탕이다. 전주가, 전주시가 진정 문화도시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바로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 축제가 있다. 전주시가 소리축제를 비롯한 축제들을 통해서 시민의 문화를 변혁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

 다분히 이웃 도시에 대한 열등감의 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시아 무슨무슨 시설’을 짓는 일이나, 육칠십년도 채 안 된 한옥 몇 십 채에 매달린 관광 사업만으로, 그토록 열망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왕조의 추억과 혁명의 기상을 동시에 자랑하며, 교육도시로서의 근대 100년을 자긍심으로 여겨온 도시가, 자존심도 기품도 다 잃어버리고, 소비, 향락, 개인주의로 망가져 가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한옥 몇 채만이 아니다. 이제 소리를 사랑하고 그 신명으로 고난을 이겨내며 공동체를 꾸려 왔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지역주민의 일그러진 일상 문화를 변혁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미래는 지식인 몇 사람의 환상으로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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