擊壤歌 부르게 할 정치는 없는가!
擊壤歌 부르게 할 정치는 없는가!
  • 황병근
  • 승인 2006.05.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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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거사를 되돌아보면 1945년 8·15광복 후 미군정하의 과도기를 거치다가 마샬 미 국무장관이 1947년 9월17일 제82차 유엔총회에서 한국 독립 문제를 상정하여 11월14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파견 안이 가결되었다. 위원단은 1948년 5월10일 이내에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5월10일 한국독립을 위한 역사적인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95.5%의 높은 투표율로 실시되었으며 대통령선거는 그해 7월10일 제헌의원의 간선으로 이승만씨를 선출했다. 제헌의원의 임기가 2년이었기에 제2대 국회의원선거는 1950년 5월30일에 실시하여 6월19일에 소집 개원되었으나 6·25동란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제2대 국회의원선거는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으로 무소속의원이 대거 진출되었고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계 인사 등이 대거 진출했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승만은 1951년 신당조직의 필요성을 발표하고 이어 자유당을 조직하였다. 국회의 간접선거로는 대통령 재당선의 어려움을 인식한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와 국무위원 불신임권 등을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을 1952. 7. 4 통과시켰다. 이것이 소위 부산정치타동이다.

 제3·4대 민의원선거를 거친 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의거로 이승만 독재와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1960. 5. 15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통과하자 바로 민의원과 참의원선거를 전제로 한 양원제의 선거법 개정을 단행했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0. 7. 29 양원제 의원선거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제2공화국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1961. 5. 16 박정희 군사혁명으로 1년도 채 못돼서 붕괴되고 말았다. 그 후 군사독재와 체육관선거 그리고 민주화 선언 등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지방자치선거를 1949년에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의해 1950년 12월에 실시할 계획 이였으나 6.25동란으로 인해 연기되어 1952. 4. 25일에서야 시·읍·면 의원선거를 했고 5월10일에는 광역의원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은 각기 다른 일정으로 선거를 하게 되었고 제2대와 3대째 지방의원 구성을 마쳤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시·읍·면장 선거를 1956. 8. 8, 86.6%라는 투표율로 선출을 했으나 광역단체장은 제2대째인 1960년 12월에야 38.8%라는 저조한 투표율로 마감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혁명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1991년 부활하게 된 제4대 지방자치 선거는 단체장을 임명제로 한 기초광역의원을 동시에 선거하게 되였으나 제5대에서부터 단체장까지도 선출직으로 함께하며 제8대째인 오늘날 5·31지방선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여덟 번째 지방자치선거에 임하고 있는 도민들은 참으로 허탈하기만 하다.

 누가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어느 누구를 또는 어떤 정당을 신뢰해야 하는 것인지 수십 년 동안 실망해온 민초들은 정치인들의 술수에 실증이나 있다. 오랜 세월 지역 정치인들을 볼모로 대통령 선거에서 97% 또는 92.7%라는 몰표를 주었든 도민들은 지역 국회의원 전원을 열린 우리 당으로 싹쓸이 해주고도 도민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해 분노와 배신감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가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정치가 아닌가! 되새겨지는 것이다. 흐루시초프는 정치인을 일러 시냇물이 흐르지 않아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인간들이라 했고 처칠은 미래에 뭣인가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다가 그것이 빗나가면 둘러댈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들이라 했다. 사리사욕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요임금이 사복차림으로 사통팔달한 거리에 나섰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으니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立我烝民 莫匪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는 강구가무(康衢歌無)를 하고 있었고 다시 다른 곳에 가보니 이번에는 한 노인이 길가에 다리를 뻗고 앉아 한손으로는 배를 두드리고 한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을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편히 쉰다. 우물을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배불리 먹으니 제왕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하는 격양가(擊壤歌)를 부른 것이다.

 이들은 각기 임금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함으로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배위 알지 않아도 자연 임금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뜻이고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도 전혀 그것을 느끼지 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정말 위대한 정치라는 것이리라. 수천 년 동안 통치해온 군주제를 물리치고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민주주의를 실행 해온지 어언 60여년이다. 그러나 태평성대의 요임금시대가 그립다. 과연 국민들에게 격양가를 부르게 할 정치는 없는 것일까

<전북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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