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계절이 온다
태풍의 계절이 온다
  • 양형식
  • 승인 2006.06.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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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디, 셀마, 루사, 매미, 나비… 우리에게는 제법 귀에 익은 이름들이다 .우리의 뇌리 속에 남아있는, 가슴 아픈 상처를 남긴 추억의 태풍들이다. 그때의 야속했던 상처는 희미해지고 추억만 남아있지만 또다시 그런 태풍이 찾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하지만 또 이제 곧 태풍의 계절이 온다. 해마다 8, 9월이 되면, 자연의 위력 앞에 한없이 나약한 우리의 인간이기에, 태풍을 지켜보며 그 세력이 약해져 주기만을, 그저 비겨가 주기만을 기도해보지만 야속하게도 기상의 이변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점점 더 강력한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태풍이다. 이 태풍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 규모는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눈앞에서 멀쩡하던 집의 지붕이 날아가고, 도로는 유실되고 ,가로수는 뽑히고, 전답은 물론 세간까지 모두 물에 잠기는 걸 보면서 우리는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지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 위력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과학 기술의 발달로 기상용 슈퍼컴퓨터가 도입되고 재난 대응 시스템을 현대화, 체계화했다고는 하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태풍의 예측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규모가, 스포츠 경기의 기록을 갱신하듯, 해마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태풍은 왔다하면 끔찍한 기억을 남기면서 커다란 피해를 주고 간다. 하지만 태풍은 우리에게 피해만 주는 걸까?

 자연에는 ‘보상의 원리’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모든 생태계는 나름대로의 법칙에 의해 공존하게 되는데 태풍도 예외는 아니다. 태풍이 해안지역에 접근해 오면서 강한 바람에 의해, 높고 거센 파도가 일게 되고, 이때 바다의 깊은 밑바닥까지도 파도에 의해 휘휘 저어지게 되고, 고여 있는 듯 하던 밑바닥의 바닷물을 완전히 뒤집어 놓게 된다. 이것은 마치 밭이나 논을 깊게 갈아 엎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평소 산소가 공급되지 않던 바다속 깊은데 까지 산소가 들어가 각종 유기물의 분해 시키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바다 속 용존산소량이 높아지고, 바닷물이 뒤섞이면서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생물학적 자정작용도 높아진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바다 생태계도 새로운 활력의 계기를 마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난폭자처럼 보이는 태풍이지만 동시에 바다 생태계에 매우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자연의 이치가 이러한데, 인간사회는 어떤가? 거센 태풍이 불어와 정체된 깊은 바다 속을 한번씩 정화시켜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가동시키는 힘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요즘 사회 자정능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극심한 충격과 혼란 속에서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복원시킬 수 있는 내재적인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이나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랫말 쯤 될까. 여하튼 자연과 인간에겐 자정능력이 있으며, 그 자정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새로운 활력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달, 우리는 5.31이라는 커다란 태풍을 맞닥뜨렸다. 정부 여당은 ‘참패’라는 객관적 현실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5·31지방선거의 결과는 상처만을 남긴 태풍일까? 아니 면 우리 사회 자정능력을 가동시키는 효자(?) 태풍이 될 수 있을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제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의학상식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경우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대부분 스트레스의 원인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가정에서는 고부간의 갈등, 부부갈등, 자녀와의 갈등으로 묘사되는데, 심하게 부딪치면 그 파괴력은 태풍에 비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태풍은 자연과 인간을 쓰러지게 하지만 어쩌면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곧 태풍이 계절이다. 미리 준비하고 태풍의 유용성도 다시 생각해보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전라북도 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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