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내 나름으로 사는 행복
30. 내 나름으로 사는 행복
  • 이동희
  • 승인 2006.08.21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 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김창업(金昌業.1658~1721)

 

 한 손엔 물질의 과실을 거머쥐고, 다른 손엔 명예의 칼자루마저 거머쥐려는 욕망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허투루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청빈한 명예만으로도 부를 통해 누리는 혜택만큼 값진 삶, 정당한 물질적 성취만으로도 영광이 되는 삶은 인생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은 매우 오래된 우리의 사회의식이다. 관-벼슬은 높고 영광된 권력으로 백성을 지배하는 자리이며, 민-백성은 그 벼슬아치의 지배를 받아야 하니 낮고 천한 신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사코 글줄깨나 읽었다는 선비는 모두가 벼슬아치가 되려고 혈안이 되었으며, 돈푼깨나 있다는 졸부들은 돈으로라도 그 벼슬을 사려고 발버둥을 쳤다.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관가의 매우 오랜 관행이었다.

 우리 사회는 ‘군주(君主)’의 나라가 아니라, ‘민주(民主)’의 나라가 된지 오래다. 관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엄연한 공복(公僕)이다. 공복이 무엇인가? 공적인 종이요 하인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오늘날 관-공무원의 올바른 의미요 위상이다. 민은 벼슬아치의 지배를 받는 낮고 천한 신분이 아니라 관-공무원을 부리는 주인이다. 주인이 무엇인가? 종을 부리는 상전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오늘날 민-국민의 올바른 의미요 위상이다.

 시대가 변하고 제도가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관존민비 의식이나 매관매직이라는 매우 잘못된 관행은 여전이 유효하다. 더 교묘한 뒷거래를 통해서 추악하기 짝이 없는 비리는 전승되고 있다.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정치권의 뇌물사건, TV뉴스 시간을 어지럽히는 관가의 독직(瀆職)사건,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관-재계의 유착사건, 선거만 끝나면 교도소를 붐비게 하는 선거사범들의 뿌리는 바로 이 잘못된 관존민비-매관매직과 관련이 깊다.

 그런 잘못된 풍토와 의식의 뿌리는 자격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명예를 얻으려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취하려는 과욕에서 비롯한다. ‘저마다 벼슬을 하고자 한다면 농사는 누가 짓는단 말인가’ 화자의 발상은 그렇게 시작한다. 자격 유무를 불문코 벌떼처럼 모여드는 곳이 관가요, 인품 여하를 막론하고 불나방처럼 탐하는 자리가 관직이다.

 그래서 관가-관직의 언저리에선 악취가 풍긴다. 그런 악취를 외면하는 사람을 일러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 하였다. 이를 밖에서 볼 때는 아전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한 지지리 못난이로 보이겠지만, 안에서 볼 때는 악취가 진동하는 벼슬살이를 스스로 거부한 지조 있는 선비가 된다. 벼슬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 바로 이 시의 화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김창업의 아호는 노가재(老稼齋)다. 노장(老莊) 분위기와 전원의 아취가 풍기는 시인이다. 노가재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넷째 아들로 네 아들이 모두 도학과 문장으로 문명을 날렸다. 노가재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전원생활을 하며 시문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의사가 모든 병을 고치면 공동묘지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러니 무병장수의 욕망도 헛된 것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 화자는 그저 ‘내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남들이 바라는 바가 아닌 내가 바라는 대로, 모두가 취하고자 하는 자리가 아닌 내게 어울리는 자리에 머무는 삶. ‘남 나름’이 아니라, ‘내 나름’의 삶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