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호우의 개화
35. 이호우의 개화
  • 이동희
  • 승인 2006.09.2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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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는 생명의 결정이자 사랑의 화신이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이호우(李鎬雨.1912~1970)의「개화」

 

 꽃은 ‘현화 식물의 생식기관’에 불과하지만 꽃을 꽃이게 하는 요소와 의미는 무수히 많다.

 충매(蟲媒)는 단순한 사랑의 매신저에 머물지 않는다. 꽃으로 하여금 한 세상을 열고 비로소 생명의 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결정체다. 꽃이 꿀과 향기만을 취하는 벌·나비를 행여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꽃의 본질인 꿀과 향기를 다치지는 않고 그저 자신의 몫만큼만 탐닉하여 사랑을 취하는 벌·나비는 그러므로 가장 충실한 자연의 파수꾼이다.

 사랑을 소유로, 사랑하는 일을 작업으로 생각하는 벌·나비는 그렇지 않다. 꽃을 꺾어야만 비로소 사랑이라고 믿는 우둔한 벌·나비, 향기마저도 의도된 작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사랑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사람 세상은 날마다 ‘장미전쟁’으로 격전이 끊일 날 없고, 사랑노래는 ‘이별의 눈물’로 마를 날이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랑으로 하여금 한 잎 한 잎 제 하늘을 열어가게 하는 사랑, 사랑으로 하여금 제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랑, 사랑으로 하여금 제 꿀의 단맛에 맛들이게 하는 사랑, 사랑으로 하여금 제 향기에 어울리는 하늘을 열게 하는 사랑이 비로소 벌·나비 사랑이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노래하는 사랑일 수 있다.

 꽃이로되 꽃답지 않게 대접 받는 사랑도 있다. 노류장화(路柳墻花)! 길가에 늘어진 수양버드나무는 아무나 꺾어도 되는 것인가? 울타리 담장 위에 피어 있는 꽃은 손에 닿으면 누구나 꺾어가도 좋은 꽃인가? 그렇게 방임해도 상관없는 사랑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렇게 대접 받아도 좋은 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개화의 순간은 그러므로 ‘떨림’이 없을 수 없다. 떨리는 심장에 자신의 사랑을 심고 조용히 귀 기우려보라.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게 하는 사랑의 맥박이 고동치지 않는가! 그럴 때 ‘나도 가만 눈을 감고’ 사랑이 보내는 신호에 응답하라. 그 응답은 바로 생명에 대한 경외며, 사랑하는 이의 가슴을 두드리는 고동소리일지나.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사랑의 결정이며, 모든 사랑은 생명의 화신일 수밖에 없다.

 신생아를 기다리는 산실 앞에 서 보라. 노류장화를 꺾었을 손길도, 유혹에 허물어지던 가슴도, 위협에 굴복하던 무릎도 저도 모르게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하늘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던가?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거룩한 체험 그것은 나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조용한 떨림’뿐이다.

 새 생명의 경외를 그 무엇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온 몸으로 체감하는 떨리는 마음!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두려움은 없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생명의 신비를 온 몸으로 감싸 안는다.

 ‘한 꽃송이’와 ‘꽃 한 송이’의 의미 차는 크다. 신성을 지닌 생명체로서의 존재의미를 강조한 것이 앞의 의미라면, 흔한 것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한 사물을 지칭한 것이 후자의 의미로 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의 꽃이건 개화(開花)는 생명의 결정체이며, 사랑의 화신이다. 나의 ‘한 사랑’을 꽃 피우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한 모퉁이에 의미를 심는다. 영원히 떨리는 사랑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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