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박병순 '문을 바르기 전에'
37. 박병순 '문을 바르기 전에'
  • 이동희
  • 승인 2006.10.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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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환절기를 알리는 징표
 가을 큰 비바람 끝에 둘레 한결 스산한데도

 네 뚫고 간 문 구멍을 차마 가리지 못한 뜻은

 이 구멍 넘어 힘이 철철 감돌던 생명 붙안고 싶어서다.

 -박병순(朴炳淳.1917~ )의「문을 바르기 전에」3연

 

 환절기를 알리는 징표는 많다. 여름이 긴 장막을 서서히 거두기 시작하면 햇살의 기울기가 달라져 창문을 통해서 비치는 사물들이 살가워진다. 아침녘 저물녘 살결에 부딪치는 바람결의 미소가 신선하여 상그러울 뿐만 아니라. 밤을 켜서 고독을 연주하는 풀벌레들의 연주회도 가을을 여는 서곡으로 제격이다.

 그런 환절기 작업 중에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문바르기’가 있다. 이 문바르기는 여름이 조금이라도 그 기세를 죽이는 듯한 기미를 보이거나, 한가위가 저 멀리서 그 둥두렷한 얼굴을 내밀 징조가 보이면 어김없이 미루지 말고 해내야 하는 작업이다.

 우선 문짝을 떼어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한 계절을 온몸으로 비바람과 추위, 눈보라와 서러움, 보고 싶지만 보아서는 안 될 것, 꼭 보아야 하지만 볼 수 없게 가로막았던 불투명한 장애물이자 심정적 투시창이었던 흔적을 떼어내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묽게 푼 풀을 문종이에 고르게 발라서 문살에 붙이는 일이다. 이렇게 문을 바르면 문종이가 붙어 있는 한 여린 바람의 연주나 습기의 내침에도 곧바로 반응하여 문이 악치처럼 제 소리를 낼 수 있다.

 문종이를 바르면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디자인작업이 있다. 문에 문양(紋樣)을 넣는 일이다. 난초 잎이나 코스모스 꽃잎, 대나무 잎을 이용하여 일 년 내내 시들지 않을 꽃향기를 문에 넣는 일은 미술 작업이었다. 사군자(四君子)가 시인묵객들만의 전유물이던가? 문을 바를 때면 우리는 문을 화선지 삼아 저마다 사군자를 치며 생활의 문향(聞香)을 발휘할 줄 알았다. 생활의 미학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았다.

 이렇게 문을 바르고 보니 문은 어느새 인생의 문이자 세상의 문이며, 나의 문이자 가족의 문이 되어 있었다. 또한 생활의 도구이자 미감을 발휘하는 예술로 승화되어 있었다. 나아가 현실의 문이자 철학과 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유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문을 열고 출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문을 열고 나간다는 것은 그 출발하는 사람의 삶이요 생명 작업의 시작을 뜻한다. 누구나 하루의 생명 작업을 마치고 휴식의 장소인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문을 여닫고 삶의 안식처로 회귀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문이자 공동체의 문이며, 나의 문이자 가족의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온전한 생명작업-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은 문을 나설 때 한번쯤 삶을 되돌아 볼 줄 아는 슬기를 실천한다.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인생이건,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한 인생이건 누구나 아침에 자신의 방문을 여닫고 나설 때 비로소 생명작업은 시작되고, 누구나 저녁에 방문을 여닫고 돌아올 때 비로소 생명작업은 안식을 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을 바르기 전’에 먼저 생명력의 일렁거림을 넘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가을, 한 철이 지나고 또 다른 한철을 예비하는 계절에 우리는 문을 바르며 우리 자신의 가슴에 뚫린 쓸쓸한 삶의 진실도 함께 내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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