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라본 전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라본 전주
  • 이세리
  • 승인 2006.10.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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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지나다 한 무더기의 인파에 휩쓸리고 부딪히다보니 벌써 100m도 넘게 밀려나 있다.

 웅성웅성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로 까치발을 들고 바라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오토바이에 청자켓, 그리고 찢어진 청바지를 동경하게 했던 홍콩스타 유덕화다. 세월이 지나도 그의 강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그대로다.

 뒤돌아 가던 길을 가려는데 도대체가 빼곡이 발딛고 걸을 틈이 없다. 해변가 비치벤치에는 초가을 바람을 즐기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고 겨우겨우 뚫고 들어간 PIFF 파빌리온에선 보고 싶었던 영화를 순서대로 말하다 결국은 남아있는 표를 선택하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 첫 타임에 남포동에서 상영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3국의 어느 영화표를 울며 겨자 먹기로 들고 나와야 했다.

 PIFF 파빌리온을 나와서도 상황은 그다지 정리되지 않았다. 공포 영화 ‘그루지’속의 귀신 분장을 한 여자들이 떼를 지어 다가와 가뜩이나 겁많은 나는 대낮에 출몰한 그들의 눈동자를 밤새 기억하며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는지.

 조금 전 유덕화가 서 있던 그 무대에는 우리나라 배우 조한선, 나문희가 영화 ‘열혈남아’를 홍보하기 위해 서 있다. ‘올 초에 전주에서 찍은 영환데 생색은 부산에서 다 내고 있다’라는 생각에 멀리 보이는 제작팀 뒷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참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김상진, 강우석 감독을 비롯한 영화감독들 BIFCOM행사장 전주영상위원회 부스에서 반갑게 “어! 전주네”라며 인사를 건낸다. 시네마비젼을 달라던 배우 황정민, 아직도 대통령같은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 하시던 배우 안성기, 웃음하나에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녹여 버린 배우 조인성을 비롯한 수 많은 배우들 그리고 제작사 대표들과 스텝들. 멍청하게 앞만 보고 걷지 않으면 언제 와서 궁금한 것을 물을지 모르는 온갖 색색 스타일의 외국인들.

 전주와는 분명히 다르다. 일부러 폭죽을 쏴 올리지 않아도 사람소리에 흥이 나고 해운대 밤거리는 자유롭게 아무곳에나 앉아 맥주캔을 기울이며 주고받는 말소리에 불이 꺼지질 않는다. 일년에 한번쯤은 그냥 내 마음대로 해도 누구하나 성내지 않을 듯 싶은 자유를 맞는 기분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 비집고 앉아 4월의 전주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날 저녁 필자는 주말마다 고정으로 출연하는 라디오방송과의 전화 연결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소개하며 거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부산은 전주국제영화제와는 다른 상업적 성격의 영화제이니 배우와 감독과 관객이 들끓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자 말했다. 하지만 이건 우리자체의 합리화를 위한 주문에 불과치 않는다.

 내년 전주국제영화제는 8회를 맞는다. 아직도 덜 성숙했다고 말하긴 너무 성숙한 횟수다. 또 대안과 독립을 이야기하는 우리와 상업을 이야기하는 그들과는 기본이 다르다는 말도 이젠 핑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무 부러워들 하고 있지 않은가? 항상 비교 당하고 있지 않은가?

 인구 3만의 일본 훗가이도의 유바리 폐광촌은 아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제인 유바리판타스틱영화제를 가지고 있다. 그곳의 집행위원장 고마쓰자와 요이치는 “성공하는 영화제를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누구든 한번 와본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한 자원봉사자의 말은 유바리 영화제가 영화제 이전에 매력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빈말이 아니다. 일본의 유바리판타스틱영화제는 우리 전주국제영화제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개성 없는 미인이 사랑을 받을 수 없듯이 겉보기는 번지르르해도 매력이 없는 영화제는 영화팬의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

 <전주영상위원회 로케이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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