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대통령 대망론
외교 대통령 대망론
  • 최규장
  • 승인 2006.10.25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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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농촌엔 해마다 10월이 되면 풍성한 호박 철이다. 헬로윈 축제를 맞아 들판에 온통 절구통보다 큰 호박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한 덩이의 무게가 1톤에 가까운 초대형 호박도 있다. 10여 년전 가을 유엔총회에 온 북한 외교관들은 고위층으로부터 이상한 특명이 떨어져 동분서주 한 일이 있다. “호박씨를 구해 오라”는 상부의 엉뚱한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큰 호박 한 덩이면 몇 사람의 배를 채워줄 수 있을까.” 공관에 돈이 떨여져 초청장까지 나간 연회도 취소하고 호텔 방에 앉아 TV를 보던 북한 총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호박씨와 버섯구름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북한 한 덩이면 수 백명의 배를 채울 수 있는 호박씨 대신 버섯구름을 쏘아 올렸다. 지하 핵실험 이어서 땅속에서 터뜨린 것이다. 북한 어린이들은 먹지 못해 뇌 성장이 멎고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보고서가 나와있다. 인민의 밥상에 풀떼죽을 올려놓기도 급한 관에 그림 속의 떡보다 못한 공포의 버섯구름을 일으키다니, 김정일 그는 악한인가 영웅인가.

 김정일의 핵실험 과장은 세계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 북한핵이 인류에게 재앙을 부른다느니, 그가 터뜨린 것은 TNT(폭약)시험에 불과하다느니, 김정일이 이참에 자신의 명을 스스로 재촉한다느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천하태평이거나 너무 두려워 할 일도 아니다. 호랑이에 물려 가도 정신만 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맞다. 김정일이 백성들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최소의 비용으로 핵무기를 손에 쥘 만큼 좋은 지도자라면 핵폭탄 사용으로 공멸의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위기를 조성하기보다 위기를 벗어나게 한 지도자가 있었음을 기억해야한다. 방어는 공격보다 얼벼다. 다섯 배는 힘들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이승만은 역경 속에서 밥그릇을 만들었고 박정희는 밥그릇을 채웠다고. 남북경쟁에서 천리마 운동은 실패하는데 새마을운동은 성공한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위기관리는 밥그릇 지키기 보다 위태로웠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때 멀리 떨어진 미국을 움직여 그들 젊은이들이 흘린 피로 나라를 구해냈다. 박정희는 대통령은 그보다 더 힘든 위기를 막아냈다. 북한 특공대가 자신의 목을 따러 청와대까지 쳐들어오고 주한미군의 완전철수 주장에 겹쳐 월남이 패망하는 통에 “없어지는 것은 (한국)휴전선이요, 생기는 것은 통일이다”고 호언하던 김일성의 으름장을 ‘유비무환’으로 이겨냈다.

 

 인류를 지옥에서 구하는 길

 김정일의 버섯구름에 가려 뉴스의 초점에서 밀려났지만 국력을 바탕으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초의 한인 UN(국제연합) 사무총장이 되었다. 북에서 피어난 버섯구름과 남 출신의 반기문 총장시대가 유엔에서 열리는 것을 보고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 조선 왕조가 자존심 부족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

 개천에서 용이 났지만 우리에겐 그 개천이 필요한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놓친 버스를 또다시 놓칠 수 없다. 반세기동안 백성을 배 곯린 선군(先軍) 왕조의 막을 내리고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들어설 절호의 기회다. 인류를 지옥으로부터 구하는 길은 외교력 뿐이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지도자들의 경륜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빌리 브란트같이 국제정치에 몸바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유엔과 산하 기구에 진출하여 세계인들과 툭 터놓고 함께 일할 국제 공무원의 수가 늘어나야 한다. 국제 공무원이 세계도처에 5만명이 넘게 깔렸는데 한국출신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니 말이 되는가.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쥐었지만 이를 이겨낼 무기는 외교관의 세 치 혀다. 두뇌싸움인 것이다.

<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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