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기반의 모국어
40. 이기반의 모국어
  • 이동희
  • 승인 2006.10.30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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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민족의 얼이다!
 흰 적삼 핏자국을 별 보고 우는 뜻은

 아리랑에 번진 가락 옥피리 청자일레

 구슬빛 하늘을 갈며 다짐하는 마음자리

 

 솔바람 꽃보라로 가꿔 온 슬기슬기

 불붙는 가슴마다 강물 지는 모국어를

 활화산 타는 봉우리에 퉁겨내는 아우성

 -이기반(李基班.1931~ )의「모국어」전문

 

 사람됨을 알아보는 징표는 크게 두 가지다. 행동과 말씨다. 행동거지를 보면 그 사람의 교양만이 아니라 심성마저 엿볼 수 있고, 쓰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갖춘 식견은 물론 성품마저 짐작할 수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사람은 언어에 의해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언어는 사람됨을 이루는 실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이루는 삶의 총화를 문화라고 한다면, 이 문화를 이루는 실체가 바로 언어다. 기록문자가 없었던 원시시대를 우리는 선사시대라고 한다. 역사 이전의 시대라는 뜻이다. 언어로서 기록되지 못한 시대는 사람의 역사가 아니었다. 언어 말고 무엇으로 사람의 사람됨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중국을 여행하였다. 안내원이 조선족 동포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 중국에는 56개 소수민족이 있다. 중국정부는 소수민족들이 중국의 정통성과 사회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가꿔며 살아가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56개 소수민족 중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말과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4개 민족에 불과하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조선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안내원은 우리의 말과 문자를 전해 주신 조상에게 감사하며 무한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이 동포의 말을 들으니 새삼스럽게 우리말과 우리 문자 한글이 더욱 훌륭하게 생각되며, 안내원의 고백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마하트마 간디는 ‘외국 지배의 여러 가지 죄악 가운데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는 피지배 지역에서 모국어를 빼앗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민족의 침략으로 잠시 동안 모국어를 잃은 우리 민족이 역사의 역경을 딛고 우리 언어를 지켜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요 해외 동포들에게도 보람과 긍지를 지니게 하는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월촌(月村) 선생의 이 작품 「모국어」에는 우리말의 소중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흰옷과 아리랑으로 드러내는 겨레붙이의 특성은 그대로 맑고 명징한 피리 소리요 청잣빛과 다름 아니다. 그 영롱한 겨레 사랑은 가을 하늘처럼 두고두고 한 겨레의 마음자락을 이룬다.

 그러므로 모국어는 추상의 학문이나 관념이 아니라는 뜻일러라.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익히고 얼에 담기는 어머니 나라의 말은 그러므로 저절로 익히게 되는 노래 가락이요 하늘 자락이며, 그 하늘을 지키는 겨레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러라.

 슬기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의 지혜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바로 말-모국어의 습득 없이 어찌 사람됨을 이룰 수 있을런가? 사시사철 열정 있는 창조의 꿈도 바로 모국어를 통해야만 비로소 ‘강물’처럼 유구한 문명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며, 모국어를 통해야만 비로소 ‘활화산’으로 터져 나오는 세기의 명작이 될 수 있을러라.

 사람으로 목숨을 받고 태어난 자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사랑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내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영광이 아니겠는가? 그 빛나는 은혜를 나랏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사람의 도리다. 모국어는 바로 겨레의 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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