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바위와 전주
거북바위와 전주
  • 이원희
  • 승인 2006.11.2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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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포항 영일만이 한동안 떠들썩했다. 천년 묵은 거북이 한 쌍이 어장으로 들어와 잡힌 것이었다. 어장 주인은 거북이를 횟집 수족관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한 사찰 주지가 ‘내가 여기에 있으니 오라’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주지는 물어물어 횟집을 찾았다. 거북은 예부터 영물이니 방생해야 한다고 횟집 주인을 설득했다. 해군 함정의 협조를 받아서 거북이를 방생했다. 물론 방생법회와 용왕제까지 모셨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6년 만에 영일만의 가뭄이 풀리고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거북이를 보기위해 그야말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거북은 옛날부터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서 영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런지 거북과 관련된 이야기는 숱하게 많다. 가락국 수로왕을 맞이할 때 불을 피우며 불렀다는 ‘구지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군가(迎神君歌)이다.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의 ‘용궁부연록’은 의인화된 거북이가 등장한다. 고전소설 ‘별주부전’ 역시 거북(자라)이 물과 뭍을 오가는 초월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거북이는 인간사회에서 영물로 취급되고 있다. 오래 살고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장수와 풍요의 상징동물이자 거북머리를 나타내는 귀두는 성기를 의미하는 말이니 성(性)과도 관련이 있다. 앞서 ‘구지가’에서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협박과 으름장을 놓은 건 모계사회에서 남성에게 성적 주문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로 보면 거북이는 장수, 풍요, 다산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임에 틀림없다.

 얼마전, KBS 역사 스페셜에서 전주 금암동에 있는 거북바위를 다룬 적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거북 형상의 바위는 많이 있다. 가령 익산 금마의 구룡마을 거북바위, 남해 금산의 거북바위, 충남 금산 어풍대의 거북바위, 속리산 수정봉의 거북바위가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바위의 형상이 얼굴, 이무기, 매 등으로 생겼다 해서 여러 바위 이름이 있지만 그 가운데 거북바위가 제일 많다. 이는 거북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소망을 기원, 의탁하는 매개적 존재로 거북이를 영물화했기 때문이다.

 전주 금암동의 거북바위는 길이가 17미터, 무게가 270톤이 되는 거대한 형상이다. 풍수적으로 볼 때 전주는 완산칠봉과 용머리 고개, 용두봉의 좌청룡과, 기린봉의 서 백호가 있어 좌청룡 우백호를 갖춘 도시다. 여기에 금암동의 거북바위가 바라보는 쪽이 남쪽 승암산이니 승암산은 남의 주작이요, 금암동의 거북바위는 북의 현무가 된다. 그래서 전주는 하나의 완벽한 네 방위의 사신체계인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을 갖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주는 천재지변이 거의 없는 곳이다. 홍수와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그야말로 온전한 땅이 바로 전주다. 전주시민의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기린봉과 완산칠봉이 두르고 있는 분지 전주가 전국적으로 더운 도시가 됨은 천재가 아닌 인재다. 바람길을 막는 무분별한 도시 계획으로 거북바위가 진땀을 흘리지 않을까 저어된다.

 <한국싸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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