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시집살이, 사랑이 전위된 악습
44. 시집살이, 사랑이 전위된 악습
  • 이동희
  • 승인 2006.11.28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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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님, 며느리가 밉다고 부엌 바닥을 구르지 마오. 빚 대신 받은 며느리인가, 무슨 물건 값으로 데려온 며느리인가. 밤나무 썩은 등걸에 난 회초리같이 매서운 시아버님, 볕을 쬔 쇠똥같이 말라빠지신 시어머님, 삼 년이나 걸려서 엮은 망태기에 새 송곳 부리같이 뾰족하신 시누님, 좋은 곡식을 심은 밭에 돌피(품질이 나쁜 곡식)가 난 것같이 샛노란 오이꽃 같은 피똥이나 누는 아들 하나 두고,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를 어디를 나빠하시는고.

 -작자·연대 미상(사설시조)

 

 이 작품은『병와가곡집』에 전하는 작품으로 대가족제도에서 맵고 고된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시집 식구들의 성품이 해학적, 풍자적, 사실적이어서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의 심리적 원인을 프로이트가 지적한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신경질적 불안, 현실적 불안, 도덕적 불안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인간은 이런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발휘하는데, 이때 작동되는 방어기제로 억압, 반동형성, 투사, 합리화, 전위, 승화, 고착과 퇴행 등을 들 수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실제의 충동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행동-‘반동형성(反動形成)’을 보임으로써 욕구나 충동의 표출로 갖게 될 불안으로부터 자신(안방 사령관으로서의 권위)을 보호하려 한다. 며느리 흠을 잡는다고 기껏 한다는 말이 “며느리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하는 우리네 속담은 미워하기는커녕 사랑스럽기만 한 며느리 자태마저 트집 잡으려 했던, 시어머니의 속내를 들킨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사(投射)’도 한몫을 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이미 체험으로 터득한 진실(시집살이의 부당함), 자신의 결점(대가족제도 아래에서 겪은 고단함)을 다른 사람(새 며느리)에게 전가시켜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결함이나 약점 때문에 갖게 되는 위험이나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투사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내(시어머니)가 그(며느리)를 싫어한다"고 하는 대신에 "그(며느리)가 나(시어머니)를 싫어한다"고 쉽게 말함으로써 시집살이를 강요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의 심리적 기제로서 ‘전위(轉位)’도 맹위를 떨치는 것으로 보인다. 전위는 본능적 충동의 표현을 재조정해서 위협을 덜어주는 상대로 대치하는 행동기제이다. 가부장적 대가족제도 아래에서는 자신(시어머니)이 겪은 고통스런 삶을 제거함으로써 (새 며느리가)자신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시대요, 풍토였다. 그럴 때 취할 수 있는 시어머니의 행동양식은 뻔하다.

 현대의 시집살이는 이제 ‘승화(昇華)’의 단계를 넘어 ‘역전위(逆轉位)’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입소문으로 들은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주말마다 아들네 집에 김치야 밑반찬이야 손자들 선물이야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시어머니가 일등 시어머니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들네 집에까지 들어가지는 않고 아파트 경비실에 그런 살림살이들을 맡기고 돌아가서 며느리에게 전화만 하는 시어머니가 일등 시어머니라고 한다. 그런 시어머니의 ‘승화’된 행위가 며느리에게 행여 심리적인 부담감을 안길 것까지 염려하고 대비하는 시어머니의 ‘전위’된 행태로 나타나는 눈물겨운 시대가 되었다.

 현대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시대가 아니라, ‘며느리 시집살이’ 시대라는 해괴한 풍속도가 급격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풍속도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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