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 50년을 말하다
배우 안성기, 50년을 말하다
  • 이세리
  • 승인 2006.11.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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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배우 안성기는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아직 허리가 구부러지지도 흰머리가 희끗거리지도 않는데 벌써 데뷔 50년이란다. 50년을 스크린에서 만난 배우 안성기는 환호성치는 열혈팬들이 주변을 메우진 않지만 그가 없는 한국영화는 생각지 않을 정도로 팬들의 가슴을 메운다.

 배우 안성기는 아버지가 영화기획과 제작일을 했던 탓에 5살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957년 ‘황혼열차’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1959년 ‘10대의 반항’에 출연하여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영화상의 문교부 장관상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상 골든 특별상(아역)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연기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67년 ‘하얀 까마귀’를 마지막으로 아역배우로서의 활동을 마감한다.

 외국어 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베트남으로 진출할 의도로 ROTC에 지원하였지만 월남이 패망한 뒤라 전방의 포병장교로 임관하고 군 생활을 마치게 된다. 제대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지만 자신의 뜻과 맞지않아 방황하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77년 김기영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을 재개한다.

 ‘제3공작’, ‘우요일’, ‘야시’ 등의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하였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안성기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계기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다. 이 영화에서 수준높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급부상한다. ‘만다라’,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칠수와 만수’ 등 그의 출연작 대부분이 80년대 대표적 흥행영화로 손꼽힐 만큼 안성기는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다.

 90년대에 들어 그는 ‘남부군’, ‘베를린 리포트’, ‘하얀전쟁’, ‘태백산맥’, ‘아름다운 시절’ 등 작품성있는 영화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투캅스’, ‘박봉곤 가출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변신에 도전한다. 2000년대에도 ‘흑수선’, ‘무사’, ‘실미도’ 등의 대작영화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안성기는 스크린 쿼터 사수운동 등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50주년을 축하해달라는 모 잡지 기획기사에서 ‘라디오스타’를 제작한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50년을 축하할 게 아니라, 50주년 때 같이 작업한 우리가 축하받아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지 모릅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안성기라는 배우를 위해 ‘라디오 스타’를 기획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는 게 저희의 축복입니다.”라고.

 필자 역시 배우 안성기의 50년을 축하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 넝마옷 주워 입고 더벅머리를 하며 흥얼흥얼 가락을 뱉던 고래사냥의 민우, 어린 승업의 재주를 알아보고 당대최고의 화가로 만들어 주었던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취화선의 김병문, 칼같이 다려 입은 양복에 인자한 미소를 가득담고 주권을 위해 고뇌하던 한반도의 대통령. 어느 것이 진짜 안성기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1957년생부터 2006년생까지의 모든 사람에게 배우 안성기는 새대차이 없이 좋은 배우로 남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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