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 임치정 선생 선정
1월의 독립운동가 임치정 선생 선정
  • 송영석기자
  • 승인 2007.01.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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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공립협회와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펼친 춘곡(春谷) 임치정(林蚩正)선생(1880.9.26-1932.1.9)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3년 하와이 노동이민으로 도미하여 오아후섬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면서 근대적 사고와 민족의식을 키웠다. 이어 1904년 미국 본토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근대학문을 수학하는 한편, 안창호 등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이주 한인들의 취업 알선과 의식개혁에 힘쓰며 한인공동체 형성에 노력했다.

 특히 러일전쟁 후 강화된 일제의 간섭에 1905년 4월 공립협회를 결성, 재미동포들에 대한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등을 통해 항일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1907년 국내외 한인단체의 통합과 국권회복운동 역량의 결집을 모색하면서 안창호가 귀국하여 신민회를 결성하자 이강과 함께 환국하여 이를 도왔다.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을 돕고, 신민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을 고조시켰다. 더욱이 의병전쟁 이후의 독립전쟁을 예상하면서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해외의 독립군 기지 개척과 무관학교 설립 계획을 추진하다가 경술국치 직후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9월 다시 일제가 꾸민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조작 사건으로 피체되어 6년 형을 받았다. 1919년 이승훈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3·1운동을 계획 준비하고, 평안도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평안남도 진남포 참사가 되어 임정의 신문, 문서들을 배포하고, 1923년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 언론활동 등을 통해 항일 독립의지를 지속적으로 분출하다 1932년 1월 9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광복회와 독립기념관은 1월 한달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독립기념관서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한 자료와 사진 전시를 갖는다. 또 순국선열유족회도 1월중으로 선생에 대한 공훈 선양 학술 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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