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억압된 것들이여 귀환하라
43. 억압된 것들이여 귀환하라
  • 이원희
  • 승인 2007.01.0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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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커튼을 열자 아침 햇살이 우루루 쏟아져 들어옵니다. 묵은 해에 있었던 어둡고 비루한 것들은 새해에는 이 맑은 햇살로 세탁되어 다시 생명이 돋기를 바라는 마음을 챙기며 새 아침을 열고자 합니다.

 문화와 삶이 다를 바 없지만, 우선 먹고 사는 일이 급한 터라 문화를 말하는 게 구름 위의 산책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삶을 빚어내는 문양도 그 사람의 뜻에 의한 것이니 삶과 문화를 살과 뼈처럼 어찌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땀벌찬 삶은 그에 상응하는 물질을 녹록하게 제공해주지 못하고, 세상은 머릿속 생각과 자꾸만 어긋나기만 하니, 문득 김시습의 시귀 ‘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내 마음과 세상이 어긋나 있으니 글 외에 즐거움이 없구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흔쾌하지 않아서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억압된 것들이 귀환했으면 합니다. 남성에 의해 여성이, 메이저에 의해 마이너가, 엘리트에 의해 대중이, 외형에 의해 내면적 진실이, 거짓에 의해 참이, 물(物)에 의해 물외(物外)의 도(道)가, 권력에 의해 소외된 자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내는 열린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들을 억압했던 어두운 힘의 횡포가 단단한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다정하게 서로 눈짓을 나누는 상생의 문화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정월은 겨울로부터 시작됩니다. 옛 농경사회에서는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은 춘경기인 삼월이라고 여겼습니다. 학교의 새 학기가 삼월에 시작하는 건 바로 농경사회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일년은 봄부터 시작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일년은 겨울로 끝나고 겨울로 시작됩니다. 이 엄연한 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겨울을 한 해의 마무리 계절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겨울은 비활동적이고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여겨왔습니다. 바로 봄이나 여름에 의해 억압되고 밀려난 또 하나의 모습이 바로 일년의 시작인 겨울에도 있습니다.

 주변의 문화현상을 두고 볼 때, 소외된 겨울처럼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밤과 낮이 경계가 없듯이 중심과 주변의 나눔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문화의 힘은 이들을 통섭해가는 데 있습니다. 하나가 여렷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문화의 힘. 이것이 화이트 헤드의 말대로 진정한 창조성일 것입니다.

 새해 꼭두머리에 서서 이 땅에 진정한 창조적 문화가 번성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하여 억압된 자들이 모든 존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 자체로 신명난 생명풀이가 이루어지도록 꿈꾸어 봅니다. 소외되고 억압된 모든 말과 몸들이 연못에 연꽃 번지듯 일어나 생명의 힘을 뿜어내는 새해였으면 합니다. 저기 저, 천년 묵은 바위 청솔가지 밑에 쌓여있는 그늘이 하얗게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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