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도 범죄다
데이트 폭력도 범죄다
  • 김흥주
  • 승인 2007.01.05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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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이민영-이찬 커플이 결혼 전부터 상습폭행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데이트 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고생의 집단폭행이나 성폭력, 가정폭력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다양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데이트 폭력의 경우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갈등상황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데이트 폭력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대부분 결혼 이후 가정폭력으로 연결되는 사회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 대학의 연구조사결과 20대 여성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데이트 중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10대 여성도 15%가 넘었다. 또 절반 가까운 남성이 애인에게 한 번 이상 폭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상당수가 언어폭력이나 성폭력, 신체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의외로 관대하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최대한의 관심표현일 뿐이라고 웃어넘긴다. 폭력을 당한 여성은 지금 당장 힘들지만 사랑의 힘으로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심각성을 못내 거부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사랑싸움 정도로 여긴다. 만약에 연인 사이가 아닌 일상의 남녀 관계에서 이러한 폭력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민ㆍ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을까?

데이트 폭력은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이지만 비대칭적 권력관계가 개입되는 폭력사건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범죄행위다. 사랑 관계는 평등과 상호존중 속에서 사회적 의의를 갖는 것이지 범죄행위까지 덮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더욱이 상대에 대한 소유욕이 유난히 강한 사람이 데이트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사랑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소유와 독점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트 폭력은 나아가 심각한 사회문제다. 개인 차원에서 학습되고 연인 사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용인되었던 폭력행위가 결혼 이후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센터에 따르면 응답자의 15.9%가 결혼 전부터 폭행을 당했으며 38.6%가 결혼 후 1년 이내에 맞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으로 포장되어 일상화된 폭력성이 가정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 마음껏 표출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법적 제제는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범죄행위이자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성숙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당사자들도 쉽게 처벌을 요구하지 않으며, 처벌의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히 사적 영역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을 꺼려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데이트 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기란 쉽지가 않다. 가정폭력방지법이 10여년의 논란 끝에 만들어지던 그간의 과정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어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데이트 폭력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노력이 중요하다. 폭력행위는 사랑과 미덕의 힘으로만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들어 내놓고 서로의 노력에 의해 최선의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강제 격리와 강력한 의학적 치료가 요구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힘과 신뢰구조가 필요하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문제다. 우리 사회는 데이트 폭력을 가정폭력과 비슷하게 친밀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상행위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이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고, 보호를 요청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요청한다 해도 적극적이지도 않다.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청소년폭력이든 폭력이 전제되는 한 공권력의 보호는 필수적이다. 폭력 자체가 한 인간의 인권을 말살하는 범죄행위이자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은 분명 범죄행위다. 가칭 ‘데이트폭력방지법’ 제정과 이를 통한 사회적 보호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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