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 주는 고귀한 가치
실천이 주는 고귀한 가치
  • 박규선
  • 승인 2007.02.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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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 일본 도쿄전철역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희생된 이수현 씨를 다룬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나와 화재이다. 추모영화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은 물론 시사회에 일본 국왕까지 나와서 고인의 희생을 기리며 자리를 빛냈다고 한다.


젊은 청년의 아름다운 실천이 강산이 바뀐다는 십년이 지나도록 이국 사람들의 가슴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가 아는 바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지식 습득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활용과 실천에 있다. 고 이수현씨의 희생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대쪽처럼 올곧았던 우리 선비들은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조선시대의 대 유학자였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배운 것만 못하고, 오히려 죄악이 된다’라고 하여 실천을 중히 가르쳤으며, 그 밑의 제자들은 모두 임진왜란 때 나가 의병장이 되었다.


흔히 교직은 성직이라고 한다. ‘성직(聖職)’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힘을 가진 직업이다. 그것은 누가 명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는 학생의 운명을 바꿀 힘이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또 교직은 전문직이라고 한다. 전문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밖에서 아무리 전문직이라고 떠들어도 우리의 일을 다른 사람도 해낼 수 있다면 듣기 좋은 치사에 불과하다.


성직은 사랑이 바탕이다. 사랑이 없이 성직에 종사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존경받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학생들에게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면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하고 말이다.


창의력과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전문직에 종사하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창의적인 스승 밑에서 창의적인 제자가 나온다. 남이 간 길만을 무작정 걸어간다면 발전은 어려울 것이다. 시대와 사회 문화가 바뀌고, 교육과정도 바뀌어 가는 상황에서 ‘혹시 나 혼자만 선 자리에 그대로 서있지 않은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성직자의 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문직의 길’ 역시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학생의 창의성이 길러지고, 자기의 직업을 사랑해야 전문 지식도 향상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까지 사랑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사랑’은 실천이다. 우리 일상생활도 그렇지만, 몰라서 못 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때 떳떳해지고, 자신에게 떳떳해야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사랑은 문제 해결의 묘약이며, 교육의 질적 발전을 이룰 추진력이다.


절대적인 가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지금 우리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하다. 단지 위안이라면 인간이 인간을 위하는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도 문화도 문명도 모두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


시대가 변화하고, 문화 양상이 변해도 인간을 위하는 사랑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학생에 대한 사랑으로 앎과 삶이 일치하는 실천 교육만이 지금 이야기하는 교육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교직이 성직이고, 전문직이라고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될 때 교육자에게 교육은 곧 희망이다. 실천의 힘으로 미래를 열어갈 등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실천했던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의 희생이 한일 양국의 냉랭했던 분위기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각박한 우리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이룩한 성자의 모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이제 영화로 제작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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