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구원은 “나눗셈과 뺄셈만 이용하는 이 풀이법은 ‘산학계몽’이나 서양수학을 담고 있는 ‘수리정온’에 근거한 중국의 전통과 결별한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홍길주 스스로도 자신의 저서 ‘숙수념(孰遂念)’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어린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는 풀이법”이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이런 계산법은 제곱근이 2.449…처럼 소수로 나오는 6과 같은 수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응용하기 좋다”고 설명한다. 6의 경우 일단 100을 곱해 세 자릿수로 만든 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24보다 크고 25보다 작은 값이 나온다. 6의 제곱근을 구하려면 이 수를 100의 제곱근 10으로 다시 나눠주면 2.449…라는 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제곱한 숫자가 만 단위를 넘을 때도 얼마든지 쉽게 풀 수 있다는 게 전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런 방법으로 홍 길주는 세제곱근, 네제곱근, 다섯 제곱근의 풀이방법도 제시했다. 그는 제곱근풀이 외에도 정수의 나머지 구하기(부정방정식),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의 성질, 황금분할, 세 정수로 이뤄진 직각삼각형의 조합 등 현대 수학에 나오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독특한 풀이법을 함께 내놨다. 당시 조선의 수학은 어떤 수준이었을까. 서강대 수학과 수학사 전공인 홍 성사 교수는 “송나라와 원나라 때 이미 4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었으며 그런 전통이 조선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넓이나 부피를 구하는 정도의 문제는 쉽게 풀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에 이미 ‘산판(算板)과 산가지’를 활용해 제곱근은 물론 10차 방정식 해까지 구할 수 있었다. 중국이 명나라 청나라로 들어와 실용수학 중심으로 흐름이 바뀐 것과 달리 조선은 송·원시대의 수학 전통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명문장가 집안 출신인 홍 길주가 수학에 몰두했던 것도 이런 전통 위에 수학과 천문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18세기 실학의 영향과 함께 서양의 수학과 과학이 들어오자 ‘종합지식인’이었던 선비들도 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홍대용을 비롯해 황 윤석, 홍 정하, 서 유본 등 당대의 많은 유학자가 이 시기를 전후로 수학을 연구했다는 기록을 자신의 책에 남겼다. 전 연구원은 “글뿐 아니라 수학에서도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홍 길주는 17, 18세기와 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