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망향가
64.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망향가
  • 이동희
  • 승인 2007.04.16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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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1902~?)「향수(鄕愁)」전체5연 중 제1연

 

 고향이 농촌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향토성의 근본이 전원에 터를 잡은 시골 정경이어야 제격이듯이, 고향은 향토성을 유전인자로 해서 시골스런 질박함이 생명이다. 그런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의 정서적 특질을 보면 숨길 수 없는 ‘촌놈’스러움이 묻어난다.

 우리 언중들은 촌놈을 비하의 뜻으로 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촌놈이야말로 희귀하지만 제대로 된 인물임을 반증하는 것이 요즘 시대다. 촌놈의 상대어인 ‘도시놈’을 상정해 보면 안다. 그런 어휘가 성립이나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도대체가 도시인의 의미역은 생각만 해도 가까이 하기 싫은 어떤 혐오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가수 신해철의 데뷔곡을 요즘 인기 있는 가수 싸이가 리메크한 곡 ‘도시인’의 가사는 이렇다. <아침엔 우유한잔, 간밤엔 소주 한잔/ 쫓기는 사람처럼 멈추지 않는 시계바늘처럼/ 답답한 거리를 꽉 채운 자동차 경적소리/ 학생들 한숨 소리 this is the city life// 모두가 똑 같은 표정을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지만/ 가슴속에는 모두 다른 마음/ 각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어젯밤 술이 덜 깬 채로/ 오늘 또 다시 전쟁/ 자판기 커피 한잔, 구겨진 셔츠/ 잠도 안잔 넥타이 맨 샐러리 맨/ 큰 빌딩 속에 앉아 시간은 잘도 간다./ this is the city life// 한 손엔 휴대전화, 따라가기엔 힘겨운 변화/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탐하는 곳/ 회색빛의 빌딩들, 회색빛의 저 하늘/ 회색얼굴의 사람들/ this is the city life//

 이것이 인생이요, 이런 삶이 사람살이여야 하겠는가? 그 대안으로 촌놈을 찾는다. 대체할 삶터로 도시가 아닌 전원을 찾는다. 마음으로는, 의식으로는, 의지만은 촌놈이 되려 하고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현실이 허용하지를 않고, 손발이 호응하지를 않는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육신은 도시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가슴 속에는 이미 촌놈이 되어 전원에서 사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꾼다.

 도시인 되기보다는 촌놈 되기가 쉬울 터이지만 요즘의 시골-농촌이 설된 촌놈, 마음만 촌놈인 이들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받아주질 않는다. 전원풍의 낭만을 찾는 촌놈이 되기가 쉽지 않다. 그 낭만의 근거가 대부분 유년기의 고향체험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버린 고향은 자기를 버린 도시인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 있다.

 그래서 도시가 삭막할수록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움을 우는’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그런 낭만풍의 고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도시 생활이 고단할수록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 달리는’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그런 농촌은 죽은 지 오래다. 도시의 그늘이 짙을수록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는’ 고향에 가고 싶지만, 그런 전원은 숨죽인 지 오래다. 도시의 현실이 각박할수록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고향을 찾아가지만, 그런 시골이 외면한 지 오래다. 도시 편의성에 신물이 날수록 ‘흐린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그런 쌈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위대한 촌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린 우리의 어리석음이 영원한 안식처-고향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잃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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