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4분짜리 예술, 뮤직 비디오
57. 4분짜리 예술, 뮤직 비디오
  • 이원희
  • 승인 2007.04.20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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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경기가 개최되기 일년 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뮤직 비디오로 제작해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유명한 성악가와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 이 뮤직 비디오는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둔 시점이어서 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스토리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명성황후 시해 주범인 일본 낭인 허준호의 강렬한 이미지가 오랫동안 대중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이는 뮤직 비디오가 대중문화 장르로 자리잡는데 톡톡한 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80년대 초반 MTV라는 음악전문 TV채널이 미국에서 가동됐고 우리는 90년대 초반 뮤직 비디오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원래 음반과 곡의 홍보용으로 제작되었던 뮤직 비디오가 이제는 독립적인 장르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전문 매니아가 생기고 뮤직 비디오를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지하철이나 백화점에서도 뮤직 비디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서 뮤직 비디오를 방영하는 건 젊은 층의 고객을 확보하려는 상업논리 때문이겠지만 이제 뮤직 비디오는 더 이상 낯선 장르가 아니다.

 뮤직 비디오는 음악과 영상의 결합이다. 영상으로 보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뮤직 비디오는 시각예술이다. 말하면, 뮤직 비디오는 음악에서 태어나 영상으로 주소지를 옮긴 이주자다. 뮤직 비디오가 영화와 친연성을 갖는 건 이런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뮤직 비디오는 영화와는 달리 4분짜리의 예술이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같이, 뮤직 비디오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트리트먼트에 스토리를 짜고 이미지와 음악을 섞어 약 4분간의 영상 포맷으로 만들어진다. 고전영화나 소설 문법처럼 선조적 내러티브 방식이 아닌 파편적인 이미지만 나열, 반복한다는 점에서 뮤직 비디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성향을 보인다. 시청자는 이런 영상을 통해 가지런히 정돈된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단편적인 이미지만 소비한다.

 이효리의 ‘겟챠’에 이어,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또다시 표절시비로 법정에서 방영금지처분을 받았다. 이는 예술의 독자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성급하게 대중심리를 포획하려는 상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양식이 패러디와 패스티시에 의존한다 해도 이러한 기법에는 자기반영성이 있어야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다. 샘플러라는 악보 기계에 의해 몇 가지 멜로디를 첨가해 만드는 게 요즘의 댄스 음악이다. 이런 음악이 주종을 이루고 가수-차라리 포퍼머(performer)-의 현란한 몸짓과 빠른 영상의 전환, 성적 자극과 표현주의적인 조명 등의 뮤직 비디오는 ‘그것이 그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뮤직 비디오는 오리지날리티가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뮤직 비디오 제작자는 감각을 열어야 할 것이다. 주류를 이루는 사진적 뮤직 비디오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영화적 뮤직 비디오 즉 이미연과 허준호의 연기가 돋보였던 ‘명성황후’ 뮤직 비디오처럼 드라마타이즈된 방식도 보다 넓은 시청자층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해봄직하다. 도시가 간판 광고로 덕지덕지 도배가 된, 이 백색소음의 세계에서 여기저기 폭발하는 이미지들은 출구없는 소비만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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