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우리에게 ‘그날’은 왔건만…
66. 우리에게 ‘그날’은 왔건만…
  • 이동희
  • 승인 2007.05.0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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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1901~36)「그 날이 오면」전2연 중 1연

 

 제대로 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겨우 10년. 이제야 과거의 오류를 지적하고, 불행했으나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과거사를 정리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후손들에게 잘잘못을 밝히는 일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있을망정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역사의 발걸음이 아닐 수 없다. 심훈 시인이 하늘에서나마 이러한 역사의 진보를 알아챈다면 아마도 자신의 비분과 강개가 조금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민족이나 국가를 구하는 것은 민초들의 희생적 투쟁과 지도자들의 도덕적 헌신이 결합할 때만 가능한 것. 그러나 이 나라에는 평상시에는 온갖 권세를 다 누리던 지도자들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면 이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돌팔매질만 해댄다. 자발적 헌신이나 솔선수범하는 도덕적 의무를 내팽개치는 행태를 보인다. 이민족으로부터 당한 치욕의 역사를 명쾌하게 척결하지 못한 인과응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심훈 시인은 그런 행태에 경종을 울린다. 나라를 되찾는 일, 민족의 역사에 드리운 치욕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의 온몸을 풀이나 먼지[草芥]처럼 버리겠다고 울부짖는다. 심훈 시인이 토해내는 저 처연한 자기선언이 우리에게는 낯이 설겠지만 민주의 역사를 먼저 이루어낸 저 서양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처신이었다. 심훈의 자기희생적 선언을 읽다보면 저 유명한 <칼레의 시민>이 연상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영·불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 중 프랑스를 침공한 영국은 연승을 거두지만 칼레를 포위·공격했다가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한다.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칼레는 결국 영국군에게 항복하는데,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완강한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민 가운데 여섯 명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통보한다. 시민의 대량 학살을 모면케 할 여섯 명의 희생양을 누구로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시민들이 불안해하자,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었던 외스타슈가 먼저 죽기를 자처한다. 그러자 이어서 법률가 장 데르가 나서고, 피에르 드 위상이라는 시민도 나선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도 시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다. 모두 도시의 지도자들. 시민들이 제비를 뽑거나 희생자를 지명하지 않도록 하여 시민의 자존심과 도시의 명예를 지킨다.

 이 역사적 사건 ‘칼레의 시민’은 11년이나 걸려 1895년에야 완성된 로뎅의 조각 작품으로 형상화되었으며, 1917년 초연된 독일 극작가 게오르그 카이저의 희곡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칼레의 시민’은 오늘날 ‘고귀한 신분의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예술의 경지를 뛰어넘어 시민의식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에게도 그날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권력을 가진 고귀한 자들의 도덕적 의무는 고사하고, 그 힘을 폭력적으로 행사한 재벌의 ‘보복폭행’이 연일 사회를 흔들어 선량한 시민들의 도덕적 의무감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에게 이 시에 형상화된 시정신의 만분의 일이나마 남았어도 이런 불행한 사건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겠는가, 자탄해 마지않는다. ‘그날’은 왔건만, 정신은 아직도 유치 찬란한 유아기에 정체되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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