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나비를 묶다
거미가 나비를 묶다
  • 이세리
  • 승인 2007.06.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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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집’싸이코패스를 말하다
배우 황정민의 첫 공포스릴러 ‘검은집’(감독 신태라)이 개봉 첫 주, 전국 관객 51만 8천여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로는 ‘극락도 살인사건’에 이어 8주만에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역시 탄탄한 시나리오로 못난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는가 보다.

 영화 ‘검은집’을 만난 건 작년 8월이었다. 공포영화라면 질색하는 필자에게 이 영화의 만남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꼭 공포가 아니어도 아이를 죽인다거나 하는 영화는 도저히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대략 시놉을 살펴보니 내가 싫어하는 건 몽땅 들어있는 ‘엽기? 종합선물세트’다.

 아예 집에 들고 갈 생각도 안했다. 사무실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는 여느 공포물과는 달랐다. 치밀한 구성과 긴장감이 영화 속 곳곳에 묻어있는게 아닌가. ‘이거 뜨겠는걸’ 가능성이 보였다.

 영화는 보험회사 직원 준오가(황정민) 만난 7살 꼬마의 자살사건으로 시작한다. 준오는 아이의 아빠 충배(강신일)를 의심하게 되고 보험사원의 규칙인 ‘상담자 개인의 정보유출 불가와 동정심 금물’을 깨뜨리게 된다. 그리고 가련한 엄마 신이화(유선). 그들에겐 무슨일이 있었을까?

 영화는 이 세 사람의 얼키고 설킨 사건을 통해 ‘싸이코패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전적 의미의 싸이고패스는 ‘성격적 문제로 인해 타인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를 괴롭히는 정신병질환’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감정없이 산다는 싸이코패스는 분명 싸이코와 다르다. 싸이코는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나 계산을 하지 않은 채 살인을 한다. 하지만 싸이코패스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살인을 한 후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 어떤 점이 걸림돌이 되는지를 철저히 계산한다. 흔히 싸이코패스를 ‘정장차림의 뱀’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싸이코패스들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인한 법률의 제제만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사회 주도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무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 상관없이 자신의 이욕에 따라 부정을 저지른다.

 부패한 정치인, 부패한 사업가, 부패한 은행장, 주가조작, 금융사기인, 사이비 교주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들은 특별한 죄의식을 느끼거나 범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평범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싸이코라 불리우는 정신질환자들처럼 제제를 받거나 하지도 않는다. 물론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극단적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나뉘기 때문에 근접한 이론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알쏭달쏭한 ‘싸이코’와 ‘싸이코패스’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 준다.

 영화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수 없는 묘한 표정들의 묘한 매력을 선사하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표현하여 공포감을 전달한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공포가 아닌 서서히 조여 녹여들어 공포 속에 물들게 한다. 거미줄에 걸려든 나비가 된 것처럼 말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막가파, 지존파, 유영철 사건 등을 보면 싸이코패스의 성향이 묻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망치나 칼등의 흉기를 이용해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도고 그날의 일들을 일기장에 적거나, 살해한 사람을 나누어 먹는 등의 행위는 아무리 잔혹하다 할지언정 인간의 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 일것이다.

 이들이 더욱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얼굴에 양면가면을 쓰고 오늘도 우리와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또 어느 순간 아무 감정없이 칼을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혹 당신 옆의 그가 온전해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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