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들판에서 무대로 들어온 사물놀이
65. 들판에서 무대로 들어온 사물놀이
  • 이원희
  • 승인 2007.07.06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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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쇳가락에 신들린 방망이가 놀아난다

 뿌리 깊은 끼 역마살에 몸을 태워

 닫혔던 응어리 풀어주는 소리,

 영혼을 뒤흔든 가락으로 겨울을 깨운다.

 

 어깻짓 실룩이며 갸웃대는 꽹과리 소리,

 꼬치 잠 자던 개구리 폴짝대고

 장고에 젖혀 넘는 춤사위

 찬바람 꼬리 끝에 풀어지는 굿거리 장단이 된다.

 

 긴 여음을 둘러메는 징의 장단,

 귀 맛을 다시어 두드리는 가락이 되고

 얼어붙은 강물 놀라 깨어지는 북소리,

 유랑 길 떠나는 겨울 위해 한마당 잔치로 두드린다.

 

  시인 정하주는 사물놀이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질곡 많은 역사 속에서 살아왔던 비극적 생의 운명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소리, 이것이 사물놀이를 이루는 악기들의 소리다. 사물놀이는 원래 불교의식 때 쓰인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네 악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훗날 북, 징, 목탁, 태평소로 바뀌고 지금은 북, 장고, 징, 꽹과리의 네 가지 민속 타악기를 연주하는 놀이로 의미가 달리 쓰이고 있다.

 사물놀이는 우리의 고유한 놀이처럼 여기고 있으나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사물놀이를 창시한 김덕수는 우리의 재래 악기 가운데 타악기 네 가지를 가지고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연희문화를 창조해냈다. 따라서 사물놀이는 표면적으로 볼 때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의 형태를 띤다. 사물놀이는 앉아서 연주하는 앉은반과 서서 약간의 춤사위와 곁들여 연주하는 선반, 두 형태가 있다. 이로 보면 사물놀이는 음악과 연극적 퍼포먼스가 결합된 독특한 악기 연주를 위주로 약간의 몸짓이 가미된 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숨쉬고 있다.

 천둥소리인 꽹과리, 바람소리인 징소리, 빗소리인 장구소리, 구름소리인 북소리를 섞어 연주자의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이른바 천지인(天地人) 삼재가 들판의 곡식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사물놀이를 들려주면 3할 이상 더 자라고 더 푸르다는 관찰 보고도 있다. 이쯤 되면, 사물놀이는 재래의 타악기를 동원한 단순한 오락적 놀이만은 아니다.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이 서로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다는 생태학적 상상력이다. 들판에서 생명을 성숙케 했던 사물놀이가 이제 무대에서 여러 장르들과 크로스오버 공연을 갖는다. 이제 다시 신명은 인간의 몫인가? 아니면 자연의 신명을 다시 불러들이는 제의인가?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김덕수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그는 전통에 말걸기를 한 대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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