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이상 作 '거울'
75. 이상 作 '거울'
  • 이동희
  • 승인 2007.07.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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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습의 자아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괘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1910~1937)「거울」전문

 

 우리는 현실에서 언제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이 길로 갈 것인가, 저 길로 갈 것인가? 이것을 가질 것인가, 저것을 가질 것인가? 언제나 망설이고 주저하며 곤혹스러워한다.

 그런데 이런 방황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누가 있어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있어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인 미래를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언제나 망설이고 주저하며, 곤혹스러운 가운데 선택하고, 결정하며, 길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곤혹스러운 가운데 어느 한 쪽으로 의지를 모아 결정하고 나면 그래도 다행이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순간에도, 혹은 그 이후에도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한 채 방황하거나, 그 방황으로 인하여 참된 자아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데 있다. 그것은 흔히 ‘현실의 자아’와 ‘본질의 자아’로 구별하지만,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행동하는 자아’와 ‘마음하는 자아’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질적인 사람들의 모둠, 각자의 이상과 취향, 희망과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나-자아’의 이상과 꿈이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이런 모둠살이를 통해서 ‘나-자아’의 바람을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은 언제나 불편하고 불행할 수밖에는 없으리라. 그래서 인간은 ‘드러난 행위’와 ‘숨겨진 마음’이라는 두 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는 없는 숙명적인 존재다.

 이렇게 대립하는 모습으로 자아를 인식하면서도 대부분의 건실(?)한 사람들은 전자의 드러난 행위와 후자의 숨겨진 마음을 잘 조절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건전한 사회인, 또는 건강한 지식인이라고 칭한다. 과연 그럴까? 지식·정보가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건전하고 건강할까?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일상적 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자아관을 확립한다. 이때 자아의 통일성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구성된 것이다. 즉, 자아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렇게 구성된 동일성은 자기소외의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현상적 자아인 '나'와 자의식에 존재하는 본질적 자아인 '또 다른 나'의 대립과 모순을 통하여 참된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극적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사람은 누구나 두 모습의 자아를 지니고 있지만, 억제된 마음의 자아를 숨긴 채 건강한 모습의 나를 드러내는 데 노련하다. 현대라는 괴물은 노련한 자아통합의 건강성마저도 위협하는 시대의 암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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