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이원익
청백리 이원익
  • 소병년
  • 승인 2007.07.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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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인조때에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은 40년간 공직생활에 멸사봉공한 청백리였다.

 명종 19년에 17세의 나이로 생원에 합격하고, 선조 2년 22세에 문과에 합격해 승무원이 되고, 선조 24년에 형조참판을 거쳐서 대사헌 호조판서를 역임하고, 선조 25년 임진왜란 중에는 이조판서겸 평안도 도 순찰사가 되고, 선조 27년에 우의정과 사도 체찰사가 되어 문관과 무관을 겸한 중책을 맡아 그 사명을 다하였다.

 이원익은 키가 세자 세치(약 1m)밖에 안돼 젊었을 때 바닥 높이가 1치(3cm)쯤 되는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하루는 나막신을 신고 관상을 보았더니 관상쟁이가 그를 아래 위로 한번 훑어 보더니 하는 말이 “당신의 키가 한치만 더 작았더라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인물이 될 관상인데….” 하면서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원익이 신고 있던 한치 높의의 나막신을 벗어 버렸더니 관상쟁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재상이 될 어른을 이렇게 만나뵙게 되오니 황공 하옵니다.”고 아뢰었다. 과연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 등 3대에 걸쳐 유명한 재상이 되었다.

 그가 현관이 되기 전에 집을 지으려고 재목을 사두었는데 갑자기 호조판서가 되는 바람에 세상의 의심을 사기 두렵다고 집 짓는 것을 단념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났을때는 이미 재목이 다 썩어 있었다. 이원익은 한평생 초가집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가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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