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사랑은 자귀나무에서
한여름 사랑은 자귀나무에서
  • 이소애
  • 승인 2007.07.1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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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기력은 떨어지고 짜증만 난다. 치솟는 부동산 값을 생각하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새처럼 비참해지는 것 같아 속이 뜨겁다. 가만히 앉아서 가진 재산을 도둑맞는 황당한 느낌 때문에 노후가 불안해진다. 건강상 환경 변화를 위해서 매매를 하려고 해도 양도소득세가 걸림돌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라고 자녀들에게 말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부의 척도는 땀방울의 무게가 아닌 톡톡 튀는 부동산 소유라고 말해야 할건가.

 답답한 여름이다. 하늘을 나르는 새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나방과 박쥐는 흰 꽃을 좋아한다. 그리고 벌과 나방은 노랗거나 파란 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듯이 사람은 부동산을 탐내는 생리적인 심보 하나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검은 구름이 하늘에 휘장을 두른 것 같은 저녁 무렵이었다. 어둠이 야금야금 대지를 핥아먹고 있을 때면 차라리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우울한 기분을 씻어 줄 것 같다. 모처럼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내 마음에 멈추라는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자동차를 몰았다. 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피었던 마을을 지나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급정거를 하였다. 빨간 신호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둠을 배경으로 요염하게 서 있는 자귀나무가 보여서다. 진한 꽃향기에 익숙한 나는 자귀나무 곁으로 가기 위해서 야생화가 있는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자귀나무는 애정목이라하여 집 주위에 심어 놓으면 부부 사이가 좋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백년해로한다지 않는가. 이왕 그이와 함께 하는 식사라면 자귀나무 꽃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면 저절로 사랑의 효험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자귀나무는 화를 가라앉히고 기쁨을 솟게 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기질이 있다한다. 그래서 자귀나무는 합환목, 야합수, 유정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치 화장솔처럼 생긴 꽃이 호수 바람에 나부낀다. 작은 노란 꽃밥을 매단 수십 개의 빨갛고 긴 수술들이 희고 작은 꽃잎에 싸여 있어 나를 흥분시킨다. 자귀나무 꽃은 첫날밤 새색시의 연분홍 볼연지처럼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자귀나무 곁으로 다가갔을 때에는 일제히 누구의 명령을 받은 것처럼 작은 잎들이 오므리고 있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잎들이 모두 쌍쌍이어서 사이좋은 부부가 포옹하는 모양 같았다. 아카시아 잎을 보면 맨 끝에는 한 잎이 있어 홀수인데 자귀나무 잎은 짝수가 아닌가. 축 늘어진 나뭇가지의 모양새가 수면중인가 보다. 꽃에 나의 볼을 대어 보았다. 화장솔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향수를 뿌린 침실의 아름다움 풍경 같았다.

 꽃들은 매개 동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호박꽃은 꽃을 크게 피우고 많은 꿀과 꽃가루를 지니고 벌을 기다리겠지. 조팝나무는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부신 몸부림으로 곤충을 불러모아야 할 것이다. 매발톱 꽃은 꽃잎과 꽃받침이 다른 색채를 띄우고 유혹하고 있지 않는가. 제주도에서 본 수국의 보랏빛이 이직도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듯 나에게도 생존을 위한 번민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고요 속에 내가 푹 빠져 있으면 빈손으로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의 소리보다는, 달콤한 초콜릿 맛에 군침을 당기곤하는 얄팍한 나의 속 느낌은 무엇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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