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우리말의 얼굴
67. 우리말의 얼굴
  • 이원희
  • 승인 2007.07.20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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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들어왔다. 영리한 한 소년에게 말했다. ‘꼼짝 말고 손 들엇!’ 소년은 그러나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도둑은 윽박질렀다. ‘죽고 싶어? 어서 손 들엇!’ 그제서야 소년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아저씨가 꼼짝 말라고 해서 그냥 꼼짝 않고 있었는데…’ 도둑은 순간, 헷갈렸다. 소년에게 한 방 먹었기 때문이다.

 ‘휴가 어디로 갈거야?’ ‘글쎄, 아직 정하지 않았어.’ 보통 우리는 이와 같이 말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휴가 가다’는 말은 말이 아니다. 휴가는 시간 개념어이기 때문에 ‘가다’라는 장소와 관련된 용어는 타당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휴가를 가다’라고 으레 사용하고 있다. 휴가는 가는 게 아니라, 보내는 것이다. ‘쇼핑 가다’도 마찬가지다. 쇼핑은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쇼핑하러 가다’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신문이나 방송 광고에 ‘피로 회복제’라는 표현이 종종 눈에 띈다. 소비자는 이것을 사 마시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곤할 때 광고가 가르쳐준 대로 용감하게 사 마신다. 그런대도 멀쩡하게 살아 있고 오히려 생기가 돋는다. 그러나 광고는 죽음으로 가는 약을 소개할 따름이다. 피로 회복제는 피로한 상태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약을 마시면 다시 좋지 않은 몸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를 바로 잡으면, ‘피로 해소제’ 혹은 ‘원기 회복제’라고 해야 마땅하다.

 ‘차비’는 ‘차를 사는 값’이기 때문에 ‘차삯’으로, ‘차 내리는 곳’은 ‘승객이 내리는 곳’으로, ‘내리실 때에는 벨을 눌러 달라’는 시내버스 안 글귀는 ‘내리시기 전에 벨을 눌러 달라’고 교정해야 한다. ‘책갈피 좀 주세요’는 ‘갈피표 좀 주세요’로, ‘축하 드리다’, ‘감사 드리다’는 ‘축하하다’, ‘감사하다’로 바꿔 써야 옳다. ‘국립공원’은 ‘국가지정공원’이 사리에 맞다.

 우리가 무심히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우리말의 얼굴이 바로 이렇다. 언어는 사물의 개념을 드러내는 1차적 기호이다. 어린이는 이 언어를 통해 사물의 개념을 이해하고 세상을 파악한다. 그런가 하면, 성인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주관을 객관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세우게 된다. 이것이 언어의 힘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자모음의 결합체로서 단순히 기호의 의미가 아니라, 사회나 세계와 소통하는 매개체이면서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플로베르의 문장은 정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언어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 그는 언어의 정확한 사용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언어는 민족공동체를 결속시키고 문화의식을 발양시키는 엔진이다. 그런데 언어가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러우며 반현상적으로 사용된다면 민족공동체의 문화의식은 결딴날 수밖에 없다.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자는 구호는 옛 시대의 국민교육헌장 암송처럼 공허한 이데올로기 강요인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라도 입을 열지 않고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우리말은 얼굴이다. 인격이니 교양이니 인품이라는 고상한 추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남에게 보여지는 우리의 얼굴, 이것이 곧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인 것이다.

 <극작가/한국싸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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